[가정예배]4월20~25일

[가정예배]4월20~25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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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15일(수) 15:12

월-아무려면 어때요
본문: 욥 1:20-22
찬송가: 413장(통 470장)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노스가 쓴 시골 신부의 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인생에 실패한 목사이다. 학문도 재능도 신통치 않은 신학교를 갓 졸업한 애숭이 목사가 프랑스 한적한 시골 교회에 부임했다. 그는 병약하여 늘 위경련으로 고생했다. 그러나 마을 농부들은 교활했고 의심이 많아 목사를 환영하지 않았다.
 
목사는 그래도 사명을 다했다. 그러나 교인은 늘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회정의를 부르짖고 사회악을 증오하던 한 의사가 목숨을 끊었다. 목사는 자신이 그를 구원받게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공들여 전도했던 백작부인이 인생에 절망하여 자살하자, 목사가 백작부인을 책망하여 자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그곳을 떠나 자신과 같은 목회자인 친구를 찾아갔다. 그러나 친구는 성직자의 꿈을 버렸고, 심한 폐병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목사 자신도 위암 선고를 받았다. 가는 곳마다 비참 불행 고뇌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임종예배도 받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호흡이 멈추기 전 친구 부인의 귀에다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려면 어때요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인 걸요."
 
아무런 열매도 없이 살다간 목사의 일대기이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무엇인가? 비록 하찮은 시골 교회 목사였지만, 이 땅에서 거두는 것이 없어도 그의 전 생애는 하나님을 위한 투자였다. 본문의 욥과 같이 어떤 고난과 불행 앞에서도 아버지의 섭리와 은총을 믿고 사는 것이 신앙이 아닌가? 어찌 잘됨 때문에 경배할 수 있겠는가?

오늘의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린 모든 것이 잘될 때에만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뜻하지 않는 불행과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이 있음을 믿고 변함없이 경배하며 신뢰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양 익 모 목사
만민교회 시무


화-보여주는 전도 방법
본문: 마 5:14-16
찬송가: 552장(통 358장)

옛 선교사들이 이땅에 들어와 사용한 효과적인 전도법이 있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산마루 등에 집을 짓고 살았다. 자연히 선교사들의 집과 삶은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게 되었다. 1905년 샤프(R.A.Sharp) 선교사는 공주 하리동에 2층 벽돌집을 건축하여 주민들에게 공개했다. 선교사 부부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식탁에 앉아 기도하고, 서재에서 성경을 읽고, 응접실에서 오르간을 치며 찬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식으로 구경꾼들에게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생활'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다. 샤프 선교사는 이렇게 몰려든 사람들을 맞는 것으로 공주 선교를 시작했다.
 
샤프 선교사는 집을 짓고 세 달도 지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부인은 그후 30년이 넘게 공주에 살면서 남편이 하던 일을 계속해 나갔다. 그녀의 한결같은 희생에 공주 사람들의 마음은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기독교인이 되었다. 선교사들은 이러한 전도방법을 '구경미션'이라 하였다.
 
이처럼 선교초기에는 구경꾼으로 선교사를 찾아갔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 한국인 최초 목사 김창식(金昌植), 광주 최초 목사 최흥종(崔興琮), 민중목회자 상동교회 전덕기(全德基) 등이 있다. 우리도 이 땅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자.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을 닮아 가면서 빛을 발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도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언제나 있는 그대로 우리의 삶의 모습이 복음의 전달체가 되게 하옵소서. 이웃에게는 은혜스러운 본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빛의 역할을 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어 춘 수 목사
꿈을주는교회 시무


수-큰 폭풍이 나 때문이라!
본문: 욘 1:11-17
찬송가: 281장

요나 선지자는 '내 탓이요'라는 고백에 생명을 걸었던 대표적인 사람이다. 요나는 적국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고 땅끝 다시스로 도망하기 위해 배를 탔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의 마음과 몸을 돌이키기 위해 바다 가운데서 역사하셨다. 요나가 승선했던 배의 선장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술과 경험으로 환난을 이겨보고자 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길 수 없었다. 이 순간에 필요한 일은 폭풍의 원인이 되는 요나의 자복과 회개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고백과 바다에 던져짐은 폭풍을 멈추고 주변 사람들을 살리는 길이 되었다.
 
요나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고 고백하는 순간 모든 것은 회복의 길로 들어섰다. 요나에게는 치욕스런 고통의 순간이지만 그 고백은 생명을 살리는 역사를 일으켰다.
 
오늘 우리 가정의 위기, 교회가 처한 어려움, 나라가 겪고 있는 고통은 남의 탓이 아니다. 요나의 고백과 같은 겸손한 심령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부흥은 프로그램이나 건물, 묘지를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무릎 꿇은 신앙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무릎을 꿇자. 연륜, 명예, 직분 등의 체면을 벗고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자. 하나님 앞에서조차 어른 행세를 하던 나의 교만을 내려놓고 회개하자. 나를 던져 회개할 때 주변이 사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주님은 내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저희는 아직도 자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손해볼까 두려워하며 삽니다. 어려워진 세상을 탓하지 말고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저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 재 필 목사
주향교회 시무


목-부활 신앙으로의 변화
본문: 고전 15:3-11
찬송가: 421장(통 210장)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인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변했다. 죽음에서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난 바울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첫째,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바울 한 사람의 역할 때문에 세계 역사가 바뀌었다. 그가 누구였나? 초대교회가 부흥을 경험할 때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엄청난 박해를 한 장본인이다. 도저히 예수를 믿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를 송두리째 변하게 한 사건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것이었다.
 
둘째, 바울은 부활의 주님 앞에 뚜렷한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사명자로 살아간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신을 그대로 믿어 주었다. 그는 일생동안 철저하게 빚진 자의 심정으로 겸손하게 산다. 사람들은 잘 잊어버리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수고한 후에도 자신이 하였다고 내세우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셋째, 바울의 부활신앙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 앞에서도, 핍박 앞에서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예수님도 시몬 베드로에게 그의 타락 직전에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다(눅22:31)"고 경고하신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 상황 속에서도 살아 계신 주님의 임재를 묵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견고하게 설 것이다.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주님, 저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주님께서 부활을 약속하신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 위 영 목사
서울숲교회 시무


금-망각된 진리
본문: 행 10:1-23
찬송가: 449장(통 377장)

독일의 심리학자 에빙하우스는 16년 동안 기억을 연구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학습 후 10분 후부터 망각이 시작되며, 1시간 뒤에는 50%가, 하루 뒤에는 70%가, 한 달 뒤에는 80%를 망각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학습 후 10분 후에 복습하면 1일 동안 기억되고, 다시 1일 후 복습하면 1주일 동안, 1주일 후에 복습하면 1달 동안, 1달 후 복습하면 6개월 이상 기억된다고 한다. 지식뿐만 아니라 은혜와 말씀도 마찬가지다.
 
기도하는 중 베드로는 온갖 부정한 동물들에 관한 환상을 보게 됐다. 그 때 "베드로야, 어서 잡아먹어라"하는 음성이 들려 왔다. 베드로는 거절하지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라는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이때 로마 백부장인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를 찾아왔다.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의 집으로 가서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고넬료 가정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나서야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을 믿고 그제서야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베드로는 이미 은혜와 구원은 유대인이라는 신분, 인종, 행위, 공로, 전통을 지키는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가나안 여자(마15:21~28)'의 딸을 고치신 사건을 통해 배웠고 알았다. 그러나 실상 베드로의 삶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적용되지 않고 삶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진리는 망각되고 은혜는 잊혀진다. 말씀에 찔린 부분이 있다면 곧바로 결단하라. 그리고 내일 또 결단하라.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도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진리로 훈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깨달은 말씀과 은혜가 있다면 그 즉시 순종하는 결단을 내리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과 은혜가 잊혀지지 않고 내 삶에 깊이 각인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 민 식 목사
동광교회 시무


토-어부가 되게 하리라
본문: 막 1:16-20
찬송가: 312장(통 341장)

왜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닷가 어부들 중에서 네 사람만 제자로 부르셨을까?
 
갈릴리 호수는 바다로 불릴 정도로 팔레스타인 최대의 담수호이다. 그 크기가 남북이 20km, 동서는 가장 넓은 곳이 12km에 달한다. 물이 불어나면 훨씬 더 넓어진다. 그 넓은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던 어부들은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독 시몬, 안드레, 야보고, 그리고 요한 이 네 사람에게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네 사람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심지어 야고보와 요한은 그의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교회의 일꾼은 하나님이 불러주시고,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이다. 일꾼 삼으시는 것은 주님의 주관대로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킨 레닌은 신학교 출신이었다.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도 신학교 출신이었다. 교육가 페스탈로치도 신학교 출신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끝까지 그 길을 가지 못했다. 오히려 너무나 엉뚱한 길로 간 사람도 있다. 주님의 뜻과 완전히 배치되는 길을 간 사람도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주님의 제자 삼으시는 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선택이시고, 주님이 뽑으신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교회 일꾼된 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주님의 선택하심으로 된 것임을 알고 '내 뜻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섬기고 봉사하자.

오늘의 기도

우리 인생의 주관자 되시고 섭리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주님의 사역에 세워주심을 감사합니다. 언제나 청지기로서 감사하며 겸손히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 종 언 목사
황지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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