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워낭소리가 들려주는 한국교회의 자화상

독자투고/ 워낭소리가 들려주는 한국교회의 자화상

[ 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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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3월 19일(목) 11:27

독립영화 최초로 2백만을 돌파했다는 워낭소리는 한편의 수채화와 같은 시다. 숨막힐 듯한 삭막한 세상에 맑은 영혼을 볼 수 있다. 초록 논에 물이 돌 듯 온기를 전하는 사랑의 울림이다. 팔순농부와 마흔 살 소, 그리고 할머니 이것이 전부다.

이충렬감독은 "워낭소리는 우리들 기억속에 화석처럼 잠들어 있는 유년의 고향과 아버지와 소를 되살리는 것이다. 삶의 내리막길에서 빚어낸, 어쩌면 이 시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소와 아버지의 아름다운 교감과 눈물겨운 헌신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뗑그렁 뗑그렁 울리는 워낭은 단순히 방울 쇳소리가 아니다. 한 시대를 먼저 살아간 우리 아버지들의 맥박이다. 그리고 추억을 되씹는 현대인들의 심장소리다. 또한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떨어질 수 없는 이음쇠다.

필자는 워낭소리를 보면서 한국교회를 생각할 수 있었다. 내용면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 물론 워낭소리의 키워드는 농촌에 대한 도시인의 향수다. 디지털 문명으로 대변되는 21세기 삭막한 도시화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잊혀진 농경사회의 소박함과 단순함으로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믿음의 뿌리를 만들었던 농어촌 교회를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 미자립교회로 머물러 있는 현실속에서 노인성도들이 겨우 지켜가는 우리의 농,어촌 교회는 이제 추억속의 교회가 아닌가 싶다. 다시한번 우리부모님이 섬기시는 농,어촌 교회를 바라보면서 한국교회에 속한 교단과 총회에서는 농,어촌 교회살리기를 해야한다. 단순히 재정적인 도움뿐 아니라 정서적이고 영적인 느림의 미학을 배워야한다. 소 걸음처럼 느긋하게 가야한다. 과도한 집착과 욕심 탐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도시의 초 스피드와 속도전에서 서두름과 조급증에 중독되어 살고 있는 우리에게 느긋하게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허둥지둥 문화' '빨리빨리 병'에서 천천히 그리고 함께 함이다. 바쁨에서 한가로움으로 살아할 필요가 있다.

이제 '멈춤과 되돌아봄'이다. '돈 보다는 더 중요한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달아야한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부흥과 성장이라는 번영의신학, 축복의 신학에서 고난의 신학 생명의 신학으로 기독교국가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운동이다. 거기에는 정직함과 정의와 사랑의 입맞춤이다. 나눔과 섬김이다. 아래로부터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과 인간 자연과 사물의 소중함을 배워야한다. 그래서 검소하고 감사에 넘치는 순례자의 삶이다. 일상의 삶에서도 마음이 넓고 깊고 맑아지도록  세상을 헹궈줘야한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피묻은 복음이다. 

워낭소리는 불편함이다. 할아버지는 정말 지독하도록 늙은 소를 끝까지 부려먹는다. '네가 일 끝나는 날이 바로 죽을 때야' 물론 소가 일을 안하면 빨리 죽는다고 하지만 안쓰럽다. 인디언들은 야생마를 잡아다 길들여 어느정도 부려먹고는 반드시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낸다고 한다. 인간의 탐욕으로 동물을 너무 가혹함을 생각할때 슬프다. 또한 노부부의 삶이 너무 버겁기만 하다. 자녀들 역시 부모님을 편히 모시고 싶어한다. 노부부의 삶의 굴레도 소처럼 일만 하지말고 쉼이 필요하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하신 주님의 음성이다. 사계절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마지막 소의 겨울처럼 노부부의 인생의 겨울이 올 때 평생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여호와집에 영원히 거할수 있도록 해야한다. 영혼의 집을 알려주는 일 역시 한국교회 몫이다.

졸시 워낭소리로 이 글을 갈무리할려고 한다.

▶ 워낭소리

주름지고 마른
세월에
찌그러진 맨살로
쩔름쩌름
어루만진다

바람에 몸 실어
할매는
중절중절
지청구를 늘어놓는다

"소 팔아""안팔아"
시간을
비게질하며
음메음메
처진 눈에
철퍼덕 주저 앉아
글썽글썽

"같이 죽어야지
와 먼저 가노?"

"딸랑 딸랑"

"일만 시켜
미얀타!"

"쩔렁 쩔렁" 

 

장 헌 권
광주서정교회 목사
광주노회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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