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대교회를 아십니까"

"강병대교회를 아십니까"

[ 아름다운세상 ] 제주훈련소 교회로 건립, 50년 군종역사의 생생한 증언자

김보현 기자 bhkim@kidokongbo.com
2007년 02월 13일(화) 00:00

온갖 비경과 이국적 정취를 간직한 땅 제주. 관광지로 휴양지로 사랑을 받아오던 제주가 최근에는 '평화의 섬'으로 새롭게 각광 받고 있는데 한국교회에게 있어 제주는 이와 함께 또 다른 의미를 간직한 곳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은 한국교회의 선교 현장으로서의 제주이다. 지금으로부터 1백 년 전인 지난 1907년 한국교회에 첫 목사로 안수 받았던 7인 중 이기풍 목사가 선교의 사명을 안고 이듬해인 1908년 도착해 복음을 증거 했다. 오늘날에도 이기풍기념관은 물론 이기풍목사가 설립한  성안교회 안에는 기념비가 건립돼 그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기풍 목사가 파송 받기 이전에 금성교회와 같은 토착교회가 설립됐다는 기록도 교회사에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제주 선교의 역사 가운데는 이에 못지 않은 의미를 간직한 현장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역사는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모슬포항 인근의 근대 문화 유산들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는 것들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일제 치하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비행기 격납고 시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신사도행전 역사 현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군선교 사역과 관련된 곳으로 이것 역시 그 역사가 한국전쟁 기간이었던 195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곳, 바로 '강병대교회'이다.

강병대교회는 오늘날 공군 8546부대에 속한 곳으로 현재는 이정욱 공군군목이 사역하고 있지만 교회가 세워진 1952년 당시 이곳은 처음으로 세워진 제1훈련소가 있었던 곳.

이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도 당시 훈련소장으로 부임했던 장도영 육군소장이 훈련 장병들의 정신력 증강을 위해 교회 건립을 추진, 1952년 9월 교회가 세워지고 이름 또한 '강병(强兵) 육성'의 의지를 담아 '강병대교회'로 명명한 것.

세월의 흐름 속에 이곳에 세워졌던 훈련소는 우리에게 '논산훈련소'로 알려진 연무대의 '제2훈련소'로 그 역할을 넘겨 주게 되었고, 훈련 활동이 활발했던 당시와는 달리 부대 인근 마을의 모습은 군 시설 몇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개발과 변화 속에 평범한 거리의 모습으로 바뀌어 이곳 훈련소와 교회의 역사를 알고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아니고는 여행 중에 그저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교회가 '제주의 숨겨진 역사의 현장'으로, 새로운 방문 여정 가운데 하나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이곳 강병대교회가 한국전쟁 당시 건립된 제1훈련소의 시설 중 유일하게 역사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시설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기상 관측 이후 가장 따뜻했다는 최근 발표처럼, 한겨울이지만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지던 날 이정욱 군목의 안내로 동 교회를 방문하게 됐다.

군 훈련소가 있던 곳이라는 설명에 위병이 지키고, 초소가 세워진 입구를 기대했었는데 그저 평범한 거리에서 불쑥 언덕 위에 교회가 눈에 들어왔고 그제서야 주위를 살펴보니 입구에 부대 안내와 교회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현판들이 걸려 있다.

2천 평에 달한다는 언덕 위 부지에 세워진 교회는 건립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교회'였다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폭에 비해 상당한 길이로 세워져 있었다. 언덕에 잔디의 푸른 빛들 사이로 거뭇거뭇한 드러나 보일 것들은 바로 교회 외벽 재료로 사용된 현무암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길게 지어졌던 예배당은 둘로 나뉘어져 새로게 보수 공사가 되어 있었다. 교회의 출입구는 건물의 중앙에 나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왼편에는 전체 공간의 절반쯤이 예배실로 꾸며져 있고, 오른편 휴게실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입구와 연결된 중앙부 다소 작은 공간은 사무실과 함께 사진과 기록들이 전시된 역사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부임 2년 째를 맞는 이정욱 군목은 "일반 매체에서 '강병대교회'를 숨겨진 제주의 명소라고 소개한 이후 부쩍 방문객이 늘고 있다"면서, 특히 "군 또한 최근에 와서야 이곳이 한국 군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현장이라는 인식과 함께 군 선교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의 방문 문의와 발길이 이어지면서 강병대교회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인근 대정고등학교 50년사를 편찬 중인 김웅철교사는 "강병대교회가 세워진 이후 훈련을 받고 이제 곧 전쟁터로 배치되어야 할 훈련병들이 고된 훈련을 받으면서도 예배시간이면 길다란 예배당 안은 물론 바깥 마당까지 자리를 잡아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면서, "당시에는 한경직 목사를 비롯해 대표적인 교회지도자들이 종종 내려와 군인들을 대상으로 집회를 열었다"고 증언한다.

이때 군인들은 한 마음으로 전쟁이 속히 끝나고 두고 온 가족들과 속히 재회할 날을 간구하며 눈물로 기도했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교회는 훈련병들에게 정신적인 위로와 영적인 재무장을 위해서 뿐 아니라 지역 사회를 위해 다양한 교육 활동 과정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모슬포지역의 첫 유치원이라 할 수 있는 샛별유치원이 1952년 첫 출발했고, 1965년에는 공군교회로 편입되면서도 야학을 개설하고 이것이 후에 교회 부설 신우공민학교로 발전해 16회까지 졸업생을 배출한 뒤 지난 1981년 안타깝게 폐교하고 말았다.

교회는 지난 2005년 새로인 개보수공사를 마무리하고 공군과 관사에서 생활하는 군인 가족, 해병 등 약 40명 가량이 출석하고 있는데 과거와 달리 일반인들은 주변에 세워진 교회들로 신앙의 보금자리를 옮기고 군인교회로 자리를 잡게 됐다.

한국 전쟁 중 모슬포항에 내렸던 16개국 참전국 군인들이 반드시 주일이면 들러 함께 예배들 드렸던 곳, 또한 국내외 군 관계자는 물론 교회지도자들이 관심을 갖고 방문했던 모습들은 지금도 고스란히 사진 속에 담겨 전시되고 있다.

오늘은 비록 샛별유치원에서 눈망울을 초롱이던 어린이들의 모습도 찾을 길 없고, 이곳에서 향학열을 불태웠을 청소년들의 웃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지만, 벽에 걸린 흑백 사진들 속에서는 4,50년의 세월을 넘어 금방이라도 풍금소리와 책 읽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한국 전쟁의 역사를 온전한 유적과 함께 간직한 강병대교회, 바로 군선교 역사 속에 담긴 열정과 의미를 생생히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와 선교의 아름다운 현장이요, 새롭게 가꾸어가야 할 교육의 현장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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