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의 첫 만남, 물결도 설렜다

성경과의 첫 만남, 물결도 설렜다

[ 아름다운세상 ] 한국 최초의 성경 전래지 '마량포'

김보현 기자 bhkim@kidokongbo.com
2006년 05월 22일(월) 00:00

서울을 벗어나 서해안 고속도로로 두 시간 남짓 달리다보면 서해대교를 건너 홍성과 무창포를 지나 '춘장대'로의 진출로를 만나게 된다.

이곳으로 빠져나와 다시 한가로운 농촌길로 약10여 분 간을 달리다보면 조용한 바닷가 마을로 들어서는 언덕길에 문득 마주치는 뜻밖의 안내석을 대하게 되고, 잠시 동해안으로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해돋이 마을', 분명 남해안도 아닌 동해안 어느 바닷가 마을에나 어울릴 듯한 조용한 마을로 들어서면 또 다른 안내문이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해돋이 마을, 해넘이 마을'

바로 이곳이 서해안에서 바다로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는 왜목마을과 함께 계절에 따라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충남 서천 서면에 속한 갯마을 '마량포'이다.

황사가 물러가고 한동안 청명했던 일기와는 달리 잔뜩 지푸린 날씨가 심술을 부리던 날,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마을로 들어서니 저 건너 방파제에는 행사를 준비 중인지 이른 시간부터 부산한 모습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지극히 평범한 곳이지만 자그마한 마을의 한 가운데 바다를 향해 있는 앞마당과 같은 곳에는 건조를 위해 올려놓은 소형 어선들이 둘러선 중앙에 뜻밖에 기념비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서있다.

'한국 최초 성경 전래지'
지금은 인터넷이나 다양한 매체들의 보고, 그리고 수차례에 걸친 세미나와 발표 등을 통해, 이곳 마량포가 '한국 최초의 성경이 전래된 곳'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이곳은 서해안 낙조의 대표적 비경을 간직한 동백정과, 한 해에만 3백만 가까운 피서객이 몰리는 '춘장대' 해수욕장, 그리고 화력발전소가 위치한 지명 정도로 알려져 있던 곳.

현재는 군에서 건립한 기념비 이외에는 마땅한 안내소나 기념관이 세워져 있지 않아 그 엄청난 의미를 기대하고 찾아 온 방문객들은 다소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서해안의 크고 작은 섬들이 겹겹이 둘러선 서해 바닷가를 바라보고 섰노라면 지금으로부터 1백80년 전인 1816년 9월 4일 마량진의 첨사 조대복과 마주했던 영국 선박 함장들과의 긴장된 첫 만남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하다.

덩그마니 세워진 기념비를 이리 저리 사진에 담아보다가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마음먹고 차를 돌려 방파제쪽으로 가보았다. 지푸린 날씨 속에 벌써 날이 다 밝아버려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는 여행 안내 책자의 설명은 실감하기 어려웠지만 걸어온 길을 등지고 조금만 눈을 들면 마치 바다를 항해하는 배 한가운데 서있는 듯 착각할 정도록 주변에 바다가 둘러져 있다.

비록 동백을 감상하기에는 조금 늦은 계절이지만 포구 마을을 되돌아 나가 5분쯤 달려가니 서편으로 향한 바다를 마주하고 동백정이 조용히 맞아 준다. 인접한 화력발전소에서는 이른 시간임에도 기계음들이 요란한데 동백정으로 오르는 돌계단 주변에는 아직도 꽃이 고운 자그마한 동백나무와 함께 군락을 이룬 커다란 동백나무들이 역시 작지만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는 해송단지와 함께 동백정의 좌우를 둘러싸고 있다.

동백정에서 바라본 흐린 바닷가 너머로 보이는 섬 어청도는 이 지역의 또 다른 교회사적 의미를 간직한 곳이다. 바로 언더우드와 함께 최초의 선교사로 이땅을 찾았던 아펜젤러가 조난을 당한 가운데 목숨과도 같은 구명복을 넘겨주고 생을 마감한 순직 현장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 지역의 교회들이 초교파적으로 참여해 구성한 '서천마량진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사업회'(회장:한상명)와 서천군이 함께 추진 중에 있는 성역화 사업에 완성되면 바닷가로 뻗어나간 언덕 위 약 8천 평 대지 위에 종교문화박물관과 함께 성경을 전해 주었던 나라인 영국과의 문화교류기념관이 세워지게 될 전망이다. 또한 현재 세워진 성경 전래 기념비 옆에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직을 추모하는 비 또한 세워지게 됐다.

이른 아침 길을 나서면 수도권과 서남부 지역은 어디서나 당일 여정도 가능한 이곳 마량포. 일년 사시사철 풍부한 축제와 언제 찾아도 넉넉한 쉼과 아름다운 경치를 느끼게 해준다. 봄이 깊어 가는 계절, 이곳은 단지 우리 민족과 성경의 아름다운 만남이 시작된 곳을 넘어 은자의 나라가 축적해 온 문화와 예절이 서양 세계에 구체적으로 소개돼 조선에 대한 선교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현장이기도 하다. 거기에 첫 선교사의 아름다운 희생의 역사마저 간직한 바닷가에 서있자니 물 때를 따라 차오르는 바닷물이 갯펄을 덮는 마음 가득 벅찬 감격이 차오르는듯 하다.

홍보에 앞장 선 지역교회들

"한국기독교의 대부흥은 2천년 기독교 역사에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의 섭리이지만 이 모든 것이 '성경의 전래'가 있었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성경 전래는 일회적 사건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문화사적으로도 서양과의 국제 교류가 시작되고, 선교사들의 구체적 관심을 촉발하게 됐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한 사건으로 부각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날 저녁 모임에 이어 기자의 방문 소식에 새벽 시간 기념비 앞에 모인 지역목회자들은 엄청난 의미에도 불구하고 2백 년 가까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마량'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재차 강조했다.

교회사가들에 의해 단편적으로 언급된 바 있는 최초의 성경 전래 역사는 중국 산동반도를 떠난 영국 함선이 충청도 비인만 마량진 갈곶에 정박하자 마량진 첨사 조대복이 군졸을 거느리고 해상으로 출동 선장 바질 홀(Basil Hall)과 맥스웰(Murry Maxwell)을 만나 이 자리에서 성경을 전달받게 된다. 당시 상황은 항해 일지 담겨 첨사의 문화적 소양과 조선에 대한 숭고한 평가가 고스라히 서구 세계로 전달됐다.

교회사가 김양선은 이 사건을 근대사에 있어 의미있는 사건으로 평가하고 전달된 성경을 1611년 발행된 킹제임스 역본으로 추론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말없이 묻혀 있던 이곳이 새롭게 조명받게 된 데에는 향토사를 연구하던 한 학자의 조용한 노력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향토사학자 유승광은 조선왕조실록 연구 중 순조 당대의 기록을 통해 기존 교회사에 기록된 성경 전래에 대한 사료를 확인하고, 이를 저서와 지역 신문 연재등을 통해 알리게 된 것.

현재 세워진 기념비는 비록 교회의 노력으로 세워진 것은 아니지만 이를 계기로 지역을 성역화하고, 마량진을 한국교회의 유산으로 알리는 일을 위해 지역교회들이 팔을 걷고 나서 빠른 시일 내에 홍보 부스를 설치하고 방문자들을 위한 안내 활동도 강화해 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가시는 길
<자가용> 서해안고속도록 - 춘장대IC - 서면 - 마량포구(2시간 30분 소요)
<대중교통> 철도(장항선) 용산 - 서천역 - 동백정행 버스(매일 32회 운행)
방문 안내
김광부목사(본 교단 월리교회 000-0000-0000)
한상명목사(기감 서천제일교회 011-451-0049)
정근중목사(기감 십자가교회 010-3406-0421)
정진모목사(예장 합동 낙원교회 010-3032-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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