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WM의 변혁적 에큐메니즘, 연대하는 선교 필요

CWM의 변혁적 에큐메니즘, 연대하는 선교 필요

[ 독자투고 ] CWM 총회 청년총대 곽형석 전도사 소감문
"연대야말로 예수가 구원에 대해 말했던 '자기 십자가'"

곽형석 전도사
2024년 07월 17일(수) 13:06
CWM 청년사전대회에 참여한 곽형석 전도사(앞줄 좌측).
지난 6월 12~19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세계선교협의회(CWM) 총회에 청년총대로 참여했다. 총회는 '생명으로 일어나라:함께 변혁하기(Rise to Life:Together in Transformation)'라는 총회 주제에 맞춰 여성·청년사전대회로 시작을 알렸다. 청년사전대회 안에서 마주한 세계의 기독 청년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한 데 모였다. 실존적 상황 속에서 새로운 선교의 방향을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종교에 대한 무관심 증가, 불평등 심화, 기후위기 문제 등 한국교회 안에서도 충분히 다루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다만 청년들에게 있어 세계교회와 한국교회 간의 차이도 있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청년으로서의 주체성이었다. 한국교회에서 청년들은 자신이 맡은 부서에서 봉사할 수는 있어도 교회의 방향성이나 예산 측정 같은 교회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교회의 지도 대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러나 CWM의 청년들은 총회를 향한 청년사전대회 성명서 서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혔다. "청년은 내일의 지도자가 아니라 사실 오늘의 지도자이다!" 교회의 지도를 받는 청년은 반대로 교회를 지도할 권리도 있다. 그들도 주의 몸 된 교회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청년사전대회에 참여하며 가장 주목한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세계 기독 청년들은 교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개인의 결단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누군가 한국교회 향한 쇄신의 희망을 품고 있더라도 의제를 다룰 수 있는 공론장과 의제를 연결하는 창구가 없다면 사변으로 남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선교를 꿈꾼다면 교회는 그것들을 담을 새 부대, 곧 새 시대를 열어갈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CWM 청년사전대회에 참여한 곽형석 전도사(좌측).
가장 인상 깊은 워크숍은 '변혁적 에큐메니즘(Transformative Ecumenism)'이었다. CWM은 에큐메니즘의 정의를 세분화한다. 세계교회협의회의 모델인 협의형 에큐메니즘(Conciliar Ecumenism), 다른 문화를 수용하는 데 방점을 둔 수용형 에큐메니즘(Receptive Ecumenism), 마지막으로 정의와 생명에 뿌리를 둔 변혁적 에큐메니즘(Transformative Ecumenism)이다. CWM이 지향하는 변혁적 에큐메니즘 운동은 10여 년 전 남반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다양성 수용, 정의에 대한 투쟁, 더 나아가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과도 연대해 생명의 역동성에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교회의 일치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라는 교회의 목적 아래에서 그 일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사회적 차별을 야기하는 권력구조에 대한 해체의 움직임 안에서 의미가 있다. 이것이 교파를 초월하는 복음의 역동성을 실현하는 진정한 의미의 에큐메니칼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도 기후위기에 연대하는 녹색교회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 교회의 선교 노선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지역교회에서 그친다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변혁적 에큐메니즘은 주변부에 대한 연대를 요청한다. 가령 기후위기 자체의 문제보다는 기후위기로 고통 받는 현장에 연대를 요청하는 것이다. 연대야말로 예수가 구원에 대해 말했던 '자기 십자가'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 마치 예수가 타인의 죄를 대신 짊어진 것과 같이 우리도 누군가의 짐을 짊어져야 한다.

이것은 단지 교리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의 실존과 관련된 문제다. 실제로 우리는 타인의 짐을 대신 들어야 살아갈 수 있다. 이미 구조적으로 견고한 사회적 악 속에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죄인으로 몰린다. 주식 투자나 재테크를 하지 않는 이들은 바보취급을, 조금 더 자는 이는 게으른 죄인 취급을 받는다. 존재가 죄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다고 긍정하신 선 그 자체이다. 우리의 존재는 선이어야 한다. 누군가의 죄는 사실은 죄가 아니라고,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밝혀내야 한다. 오직 죄인(이라고 여겨지는 이들)을 향한 연대만이 하나님의 창조를 살아내는 것이다. CWM의 변혁적 에큐메니즘은 이러한 구원과 실존의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지극히 개인주의로 치닫는 한국 사회 속에서 교회는 개인 중심의 구원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상호구원을 말하는 새로운 형태의 선교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곽형석 전도사 / 장신대 신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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