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의무

사랑할 의무

[ 목양칼럼 ]

안성덕 목사
2024년 02월 08일(목) 13:04
개척 초기의 일이다. 성도 가운데 성격이 괴팍한 사람이 있었다. 회심한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성품이 다듬어지지 않아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곤 했다. 어느날 집사님 한 분이 찾아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목사님, 저 사람 좀 내보내면 안 되겠습니까? 많은 성도가 괴로워합니다. 저 사람만 없으면 교회가 평안할 것 같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목사로서 당연히 성도 한 사람쯤 내보낼 권한이 있을 거로 생각한 모양이다. "집사님, 목사에게는 성도를 선택할 권한이 없습니다. 다만 사랑할 의무만 있을 뿐입니다. 제가 저분을 선택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로 보내셨습니다. 제 양이 아닙니다. 제게 맡겨진 예수님의 양입니다." 이 말을 들은 그 집사님은 심각한 얼굴로 돌아갔다.

교회는 지상에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 정도로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교회 안에는 천사같은 성도들로 가득 차 있을 거란 환상을 갖는다. 목사는 천사장의 지위쯤 해당하니 더 고결하고 거룩한 인격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일단 그 환상은 우리 목사의 모습을 보면서 깨어지기 시작한다. 목사의 이상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찬양하는 장로들과 천사들 혹은 적어도 흰옷 입은 성도의 모습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냄새 나는 죄인이다. 누구를 비난할 형편이 못 된다. 당연히 세상보다 정도는 덜하나 교회 안에 죄인들로 가득 넘친다.

교회 안에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영적으로 건강한 성도들만 있는 게 아니다. 예수님을 떠나 세상에서 방황하며 얻은 상처와 아직도 치유 받지 못한 죄의 질병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교회에 나온다.

교회에 나오면서 단번에 죄악을 끊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누구에게나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죄인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받아주신다. 그리고 죄악의 사슬을 끊어내고 거룩한 하나님의 성도로 서서히 세워질 때까지 기다려 주신다.

병원 안에서 밤새 앓는 환자들의 신음이 흘러나오듯 교회 안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병원은 단순히 환자들을 격리하는 폐쇄병동에 그쳐서는 안 된다. 병원이 제 기능을 다 하면 응급실로 들어왔던 환자가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병실로 옮겨진다. 건강이 점차 회복되어 병원 안에서 다른 환자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건강을 되찾으면 환자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돌봄을 받던 사람이 세상에 나가 도움을 주는 인생을 산다.

마찬가지다. 교회는 의인만 모여 있는 곳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교회는 지상에 없다.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저주에 사로잡혀 살던 영혼을 부르셔서 구원하신다. 언제나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고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죄인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신다. 자신의 아픔에만 집중하던 사람들의 시선을 타인의 아픔에 두게 하신다. 건강한 사역자로 세워져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역 현장으로 달려가게 하신다. 교회의 신비다.

문제 많은 성도를 볼 때마다 방금 응급실로 들어온 환자를 생각하자. 교통사고를 당해 119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가 멀쩡히 서 있기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정상적인 치료를 받으면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이처럼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구원하시고, 변화시켜 일꾼으로 삼으신다. 당연히 필자도 그 혜택의 수혜자다. 교회 안에 당연히 부담스러운 성도가 있게 마련이다. 여전히 치료가 필요하여 신음하는 성도들도 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양이다. 아무리 필자가 교회를 개척했다고 해도 성도를 선택할 권한은 없다. 이단자라면 당연히 교회에서 쫓아내야 한다.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에 합당한 권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목사에게는 그 양을 사랑할 의무만 있을 뿐이다.



안성덕 목사 / 남양주충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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