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순서지 한 장의 위로

장례순서지 한 장의 위로

[ 목양칼럼 ]

구영규 목사
2023년 12월 06일(수) 14:51
목회자에게 가장 힘든 일은 아마도, 오래 함께 한 성도의 장례를 집례하는 일일 것이다. 장례가 나면 그 날부터 마음이 너무 바빠지고,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지,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조기를 준비하고 조화를 보내고, 장례 순서지를 준비하면서, 2박 3일은 거의 모든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장례에만 집중 한다.

그러나 목회자가 장례에 집중한다고 그게 가족들에게 위로가 되는 건 아니다. 갑작스럽고 슬픈 장례일수록 더 그렇다. 어떤 말도 어떤 의미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그렇게 가족들은 2박 3일을 견뎌야 하고, 장례이후의 긴 이별의 시간을 살게 된다. 무엇이 위로가 되고 무엇이 힘이 될까. 그런 위로가 별로 없다.

지금도 걱정이다. 오래 함께 한 교회의 어머니들 아버지들의 장례를 앞으로 어떻게 집례를 해야 할까. 걱정이다. 그러나 목회가 그런 것 같다. 삶의 의미를 함께 찾고, 영원한 소망을 함께 품는 일, 그렇게 오늘과 영원을 같이 살아가는 것, 목회 하는 동안, 태어나는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환영해 주고, 돌아가시는 분들을 최선을 다해 주님의 품으로 보내드리고 남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 그게 목회의 가장 중요한 부분 같다.

그러나 막상 장례가 나면 모든 게 어렵다. 아직 인생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이제 나이 오십의 어린 목사가 여든 아흔의 인생을 살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신 아버지 어머니들의 그 삶의 내력을 어떤 말로 위로할까. 가족들에게 충분한 위로를 전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말은 의미가 없고, 설교가 너무나 힘들었다.

그래서 장례순서지를 잘 만들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장례 순서지에 꽃도 넣고 나무도 넣고, 좋은 풍경을 넣었다. 그래서 마음에 위안을 주는 순서지라도 한 장 만들어 가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돌아가신 분의 환한 얼굴을 순서지 안쪽에 넣기 시작했다. 교회에는 의외로, 자녀들에게 없는 부모님의 사진이 많이 있었다.

늘 교회에서 사진을 찍으시고, 미리 잘 나온 사진들은 따로 모아두기에, 장례가 나면 장례순서지 한 장을 열심히 만든다. 사셨던 집, 정원, 모임 사진,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활짝 웃으시던 사진, 사진만 보아도,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정말 행복하셨나봐. 교회에 이런 사진이 있네. 어떻게 이렇게 활짝 웃으시지?' 참 감사하게도, 그 사진 한 장, 순서지 한 장을 들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모습을 보았다.

'아! 이게 위로가 되는구나.' 싶었다. 처음엔 가족들이 혹시 불쾌하게 여기지 않으실까 염려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모든 가족들이 고마워하셨다. "목사님! 어머니 사진이 교회에 있었네요. 우리는 사진이 없어요. 주름이 자글자글한데 무슨 사진이냐고, 찍지 못하게 하셨거든요. 갑자기 돌아가시니까, 사진이 없어요. 목사님. 이 사진을 보내줄 수 있으셔요?" 말씀하신다.

장례를 집례한다고, 유족과 성도들 앞에 서면, 할 말이 없다. 눈물부터 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준비된 말씀은 있어도, 그 말씀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울고 있는 가족의 얼굴을 보면 할 말이 없는데, 엄마의 웃는 얼굴, 아빠의 환한 미소가 담긴 장례 순서지를 들고 앉으며, 위로를 할 수 있고, 말씀을 전할 수 있다. 여러 말 하지 않아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

그리고 교회 홈페이지에 장례 순서지를 올려 둔다. 교회 성도님의 장례 순서지는 물론이고 부모님이 교회에 나오지 않으셨어도, 조문을 하고 위로예배를 드린 모든 분들의 장례 순서지를 홈페이지에 올려둔다. 그리고 거기서 돌아가신 분들의 얼굴을 보고,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낸 성도들을 생각한다.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안 되지만, 그 행복했던 순간의 사진 한 장으로, 잠깐의 위로를 얻고, 영원한 소망을 함께 바라본다.



구영규 목사 / 송전양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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