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에서 찾은 옛날 이야기 - '그땐 그랬지'

아카이브에서 찾은 옛날 이야기 - '그땐 그랬지'

[ 한국기독공보주일 ]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22년 04월 05일(화) 18:08
1956년 12월 24일자 성탄절 새벽송 기사
아카이브에서 찾은 옛날 이야기 - '그땐 그랬지'



한국기독공보가 완성한 아카이브는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길이 남을 중요한 업적임을 자부한다. 1946년 1월에 창간된 이후 소실된 신문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발행된 신문의 기사를 검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지난 역사를 검색만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주요 사건과 이슈를 시대별로 비교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2022년 한국기독공보 주일을 맞이해 과거에는 성행했으나 현재는 찾아볼 수 없는 기사 3가지를 검색해서 확인해 보았다. 아카이브를 통해 주제 단어 행사 다양한 내용을 검색해서 읽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1. 어머니들의 신앙의 표현 성미(誠米)

2000년9월9일 자 문학의 밤 기사
성미는 6.25한국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2년 12월 15일자 신문 1면 기사에서 처음 등장한다. 기사 제목은 '韓國救民運動(한국구민운동)인 誠米運動(성미운동)'이다. 이를 제창한 지도자는 배민수 목사이다. 53년 1월 5일자 신문의 '불기둥'에서 본보는 "最近(최근) 배민수 博士(박사)로부터 提唱(제창)된 誠米運動(성미운동)도 결코 그것이 적은 運動(운동)은 아니다. 한 끼에 한 숟가락씩 百萬信徒(백만 신도)가 떼어 모은다면 大(대)두로 一千(일천)두 하루 二食 計算(2식 계산)으로 한다면 四百石(4백석)이 된다."

본보는 53년 11월 23일자 사설에서는 '쌀 한 술 뜨기 운동'으로 성미운동을 발전기켜 나가는 등 이후 성미운동을 확산에 박차를 가하는 기사를 쏟아냈으며, 여전도회 등이 이에 참여하고 있음을 소개하기도 했다. 1970년대 교회를 취재해서 보도한 기사에서는 교회 제직회의 한 부서로 '성미부'를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도 이 성미운동은 농어촌 지역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교회 일부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성미운동의 의미는 여전히 교인들의 기억속에 남아 있다.

다소 성미운동이 주춤해진 1997년에 북한 돕기 운동이 전개되면서 성미는 부활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중심이 돼서 발족한 북동포돕기비상대책기구가 '평화의 성미 보내기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이 운동은 NCCK 산하 1만 4000여 교회의 100만 가정이 각각 북한 주민 한 사람 식비를 책임지는 운동으로 배민수 목사가 1950년대에 시작한 성미운동과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현대 교회들이 성미를 드리지는 않고 있지만 각종 구제 활동에서 '성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2. 교회 청소년 활동의 중심 '문학의 밤'

1952년12월15일자 성미 기사
50대 이상으로 청소년기를 교회에 보냈던 교인이라면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바로 '문학의 밤'이다. 교회가 크고 작건 관계없이 중.고등 학생이 있는 교회이면 1년 중 한번은 이 '문학의 밤' 행사를 가졌다. 교회마다 행사 명칭을 조금씩 다르더라도, 시낭송을 비롯해 찬양과 악기연주, 그리고 하이라이트로 장식되는 성극(꽁트)과 중고등부 찬양대의 합창이 주된 프로그램이다.

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에서 '문학의 밤'을 검색한 결과 176건의 기사가 검색됐으며, 검색어 '학생 문학의 밤'은 59건, '청소년 문학의 밤'은 25건이다. 이 중에는 교회 학생회(청소년)와 관련되지 않은 기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 사실상 기사가 다양하지는 않다.

아카이브 검색 결과 가장 래된 '문학의 밤' 기사는 '성탄축하 문학의 밤'이란 제목의 1957년 12월 23일 3면 기사이다. 그리고 58년 3월 10일자 1면 '기독교 문학의 밤'이 부산 돌베개동문회에서 주최로 열린 기사이며, 2월 3일자 1면에 한국신대 학생회가 주최한 '기독교문학의밤' 기사가 단신으로 처리됐다.

학생회(청소년, 중고등부)가 주최한 '문학의 밤' 첫 기사는 문화교회 중.고등부가 주최한 제4회 '기독문학의 밤'이다. 단신으로 처리된 이 기사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문화교회 중·고등학생회가 주최하는 제4회 기독문학의 밤(「은하수의 밀어」)이 지난 26일 시내 각 교회 학생회원들을 초청, 250여 명이나 모인 성황 가운데서 시·수필·꽁트 등 20여 편의 기독문학작품이 발표되었다."(1971년 7월 3일자 6면) 다음 기사는 이듬해인 1972년 12월 2일자 8면에 게재된 왕립리중잉교회 학생회가 주최한 '종려 문학의 밤'이다.

이같이 개 교회 학생회 행사가 단신이지만 기사화될 수 있었던 것은 교회 청소년들에게는 중요한 행사였음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1979년 8월 25일자 4면 오병수 목사(시인)의 칼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오 목사는 " 교회 청소년들의 성장하는 모습은 열 가지로 나타난다. 종교적인 것, 사회적인것, 음악적인것, 문학적인것 등…이런 모든 활동 가운데 문학적인 것은 그들의 손으로 문학의 밤이 마련되고 회지(會誌)가 발간되는 것으로 반영되는데, 이에 대한 그들의 열성은 대단한 것이다. 문학의 밤을 준비하고, 회지를 발간하기 위하여 없는 주머니를 털고 밤잠을 자지 않으며 동분서주하는 것이다."

이렇게 교회 청소년의 문화로 자리잡은 '문학의 밤'은 1980년대 이후에 시들해지면서 새로운 문화로 전환된다.

한국기독공보 2000년 9월 9일자 11면 기사 '청소년 잔치 '문학의 밤' 새로운 형식, 아이디어 반짝 반짝' 제목의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청소년의 문화 변화와 함께 교회 문화도 시대 변화에 따라 변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은 기사 내용이 보편화 되지는 않았지만, 교회 청소년들이 '디지털 캠코더, 영상편집기 등 첨단 기기 이용해 영화 제작', '창작 영화, 영어 뮤지컬, 창작 사물놀이', '이태리어 성가 발표'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3. 성탄절 새벽송

어렸을 때 교회 생활을 추억하면서 첫 번째 떠울리는 것이 성탄절 새벽에 있었던 새벽송 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잊혀진 성탄 문화가 되어 버렸다.

이에 대해 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에서 '성탄절 새벽송'을 검색한 결과 82건이 기사가 검색됐다. 생각보다는 적은 수이다. 그래서 '새벽송'으로만 검색하니 119건이 검색된다. 기사 내용은 대부분 필자들이 경험했던 새벽송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 중에 주목이 가는 기사는 1956년 12월 24일자 1면에 게재된 사진 기사로 '성탄 새벽송-아시아 12개국 미국 유학생들의 성탄 새벽송'이다. 그리나 같은 신문 2면에 게재된 '새벽송 행사 중단'이라는 제목 기사에 씁씁한 맛을 느낀다. 정동제일감리교회가 새벽송 행사를 25일 아침예배 참석에 지장이 있다며 중단했다는 내용의 기사다.

새벽송은 1980년대까지는 일반적인 행사였지만 이후에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소실된 문화가 됐다. 추억속에만 남아 있다.

박만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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