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지역에서 홀로코스트는 지금도 계속된다

팔레스타인 가자지역에서 홀로코스트는 지금도 계속된다

[ 논설위원칼럼 ]

정종훈 교수
2023년 10월 30일(월) 11:10
최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급습과 이스라엘 군의 가자지역 보복 공격, 이어지는 양쪽의 무분별한 폭격을 20일 이상 목격하며 마크 엘리스(Marc Ellis) 교수가 가 떠오른다. 그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과 지금의 이스라엘 국가가 이름은 같지만, 서로 동일시할 수 없다는 논지 아래, 그동안 이스라엘 국가가 자행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억압 정책과 인종차별을 비판해 온 유대인 신학자이다. 그의 비판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권력을 지닌 미국의 유대인과 정치인들을 불편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대학 강단에서 쫓겨나는 빌미가 되었다. 그가 전개하는 논지는 명확하다.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했던 초창기 기독교는 소수 종교로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자처하며 기존의 유대교와 다른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은 유대교에 대한 기독교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했고, 바로 그때부터 전투적인 기독교는 유대교와 유대인들을 끊임없이 비방하고 박해했다. 독일 히틀러 정권에서 자행되었던 홀로코스트는 반유대적인 흐름의 절정이었다. 유대인 600만 이상의 학살을 감행한 홀로코스트 이후의 기독교는 유대교와 유대인들을 비방하고 박해했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홀로코스트 이전의 반유대적인 기독교를 스스로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유대인들은 기독교에 내재된 반유대적 요소를 반성하고 제거할 것을 주장할 만큼 기독교인들과 동등한 위상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기독교와 유대교는 독립적이고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에 있는 담지자로 서로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이러한 연대감은 팔레스타인을 향해서 권력을 남용하는 이스라엘의 포악함을 간과하도록 만들었고, 포악한 이스라엘을 비판하지 않는 기독교를 반유대적인 과거와 결별한 기독교로 오해하도록 만들었다.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의 연대적인 대화가 일종의 정치적인 흥정으로 변질되어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의 과거 역사와 기독교의 참회만 강조할 뿐, 현재 벌어지는 팔레스타인의 극악한 상황에 근원적 문제를 제기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설정하는 기회를 상실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유대인들이 과거에 당했던 핍박과 수난이 지금은 가해자인 유대인들에 의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청소와 무력 침공'의 형태를 반복하도록 만들었다. 이제라도 양심적 기독교인들과 양심적 유대인들이 연대해서 유대인들에 대한 맹목적인 포용과 낭만적인 이해, 그리고 반유대주의의 반대급부로 유대 민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 정치적 흥정을 포기하고 서로의 문제점을 직시하며 비판해야 한다.

오늘 한국 개신교는 이스라엘을 급습한 하마스를 비난할 뿐, 원인을 제공한 이스라엘의 문제에 대해서는 간과하거나 침묵한다. 이스라엘은 A.D.70년 로마와의 전쟁에 패배한 이래로 세계를 유리방황했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를 못했다. 그러던 그들이 1948년 영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지원 아래 이스라엘 국가를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국했다. 그들은 2000년 이상을 살아온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거주지역을 정당하게 매입하지 않았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고향에서 살 권리를 부정하고 거주지로부터 축출했다. 레바논과 시리아 등지에 국적 없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떠도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들은 남아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시민권을 인정하기는커녕, 가자지역과 서안지역에 가두어 비인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히틀러 당시 게토화됐던 유대인들이 가자지역과 서안지역을 감옥처럼 게토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인구밀도 높은 두 지역에 유대인 정착촌을 화려하게 건설하면서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제 우리 기독교인은 같은 차원과 같은 맥락에 있지는 않더라도, 하마스의 급습과 이스라엘군의 보복 공격, 지속되는 상호 폭격이 사람들을 살상하고, 살만한 삶의 환경을 초토화하고 있음을 동시에 규탄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무고한 주민들과 가자지역 팔레스타인의 무고한 주민들이 두려움과 증오 가운데 처해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모두가 소중한 생명임을 강조해야 한다. 무엇보다 강자 이스라엘의 구조적인 폭력이 약자 팔레스타인의 저항폭력을 초래한 것인데도, 현재 이스라엘군의 진압폭력이 하마스의 저항폭력 수준을 수십 배 넘어서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살라는 명령 가운데 주어진 모든 생명의 '살 수 있는 권리'를 동등하게 인정하고, 그 생명들을 '살려야 할 책임'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은 전방위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폭력 가운데 진행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전쟁을 당장 끝낼 것을 요구하고, 함께 '평화를 만드는 것'을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

정종훈 교수 / 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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