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岐路)에 선 교회여, 각성하라'

'기로(岐路)에 선 교회여, 각성하라'

[ 논설위원칼럼 ]

김운용 총장
2023년 08월 21일(월) 14:00
숙원 사업이었던 학교 노후 도서관 교육환경 개선공사가 오랜 기도와 준비 끝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 시작되어 재개관을 앞두고 있다. 눈물 젖은 후원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기에 감사로 가득하고, 새롭게 단장되는 공간에서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며 학문의 열정을 불태워 갈 학생들을 생각할 때 기쁨이 가득하다. 도서관 로비엔 122년 역사 가운데 민족과 함께, 교회와 함께 달려온 '멋진 장신인'을 기념하는 공간(장신 레거시)이 마련되었다. 거기 담을 선배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그런 유산이 있어 감사함이, 그리고 오늘 우리의 부끄러움이 함께 몰려왔다.

그중 한 분은 19기 졸업생으로 부산에서 첫 담임목회를 하던 중, 열악한 남해 농어촌 교회 청빙을 받아 달려간다. 부임 설교 제목은 당시 상황을 반영한 듯, "일사각오의 기로에 선 조선 기독교"였다. 교회 내 분파, 서북/비서북 지역 간 대립, 신사참배 문제 등으로 갈등하던 교회의 '각성'을 촉구한 설교였다. 1936년, 천주교에 이어 성결교, 감리교가 신사참배를 결의했고, 1938년엔 장로교도 공식 결의했으며, 산하 노회들도 결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해, 신사참배 반대로 모교가 자진 폐교했을 때, 그는 경남노회 노회장이었다. 노회를 정회시키는 방법으로 전국 노회 중 유일하게 '신사참배를 가결하지 않은 노회'로 만들었다. 불의와 결코 타협할 수 없었던 열정이 그 지역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그 주역들인 주기철, 주남선, 한상동, 손양원 등은 경남노회 출신이었다. 주기철은 신학교 동기면서 9살 아래, 손양원은 경남성서신학원 제자이자 신학교 후배이면서 14살 아래였다. 신사참배 반대 혐의로 49번 연행되어 옥고를 치렀고, 고문과 영양실조로 광복 3개월 전 평양형무소에서 순교한다. 그의 이름, 최상림(남해읍교회 초대목사), 강단에서, 삶으로, 죽음으로 외쳤던 그의 설교는 계속 들려온다. '기로에 선 교회여, 각성하라.'

또 한 분은 여자신학부 졸업생으로 여전도회 파송 중국 산둥성 선교사로 섬겼고, 해방 후에는 모교 여성 신학부 교수와 사감을 지냈다. 공산주의 박해가 심해지면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많은 이들이 월남하던 때, 그는 검문을 받으면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 한 명이라도 더 전도하겠다고 북한 땅에 남기로 작정한다. 모두 남쪽을 향하던 때 신의주제2교회 청빙을 받아 북쪽으로 올라갔고, 새벽 강단을 지키다가 1951년, 공산당에 체포되어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하나님 앞에(Coram Deo) 서 있음을 알았기에 단 한 번의 거짓말을 못 해 49세, 미혼으로 순교의 면류관을 썼다. 그의 이름 김순호, 현재 장신대 여생활관은 그의 이름을 명명하여 기념공간으로 조성했다.

오늘 우리는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좋은 여건 속에 서 있지만, 영적으로는 그때만큼이나 위태한 '기로'에 서 있음이 분명하다. 한국교회 신뢰도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고, 젊은 세대의 교회 이탈 현상은 더 두드러지고 있다. 매스컴에 비치는 교회 모습은 늘 부정적이고 편협과 위선의 얼굴이며, 희화화하거나 조롱거리로 삼고 있다. 작금 가장 건전한 교단으로 인정받았던 우리 모습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 이유는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 아는 일이다. 신앙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 상식과 원칙, 기본만이라도 더 철저하게 지켜가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프랑스 개신교도 위그노는 200여 년 넘게 긴 박해를 당했다. 많은 이가 갇혔고, 죽임을 당했다. 그들을 가두는 감옥엔 문이 없었다고 하지 않던가. 얼마든 도망갈 수 있었지만 아무도 도망을 가지 않은 이유는 문을 나서는 순간, '위그노 신앙을 포기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19세에 감옥에 갇혀 38년 동안 옥고를 치른 마리 뒤랑은 감옥 벽에 머리핀으로 한 단어를 새겼다. Resistez!(저항하라). 무엇을 저항하라는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교회, 변질된 신앙과 가르침, 잘못된 제도와 예배, 그것은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핵심이며, 후예들이 지켜가야 할 책무이다.

오늘 한국교회도, 우리 교단도 다시 '기로'에 서 있음은 분명하다. 혹 변질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지 않은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지, 지금 우리에겐 다시 '각성'이 필요한 때이다.

김운용 총장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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