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누는 아픔과 공감이 '치유'의 힘

함께 나누는 아픔과 공감이 '치유'의 힘

장기기증운동본부, 장기기증인 유가족 심리지원 프로그램 진행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3년 08월 06일(일) 23:19
왼쪽부터 도너패밀리 홍우기 씨, 도너패밀리 회장 강호 목사, CCC 이혜란 센터장, 본부 김동엽 이사 등이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상견례를 닷새 앞둔 아들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꿈꾸던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아버지는 고심 끝에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아들의 생명은 죽음의 고비에 있던 6명 환자를 구해냈지만 아버지는 1년간 제대로 먹지도 못할 만큼 극심한 슬픔을 마주해야 했다. 홍우기 씨의 사연이다. 지난 2015년 7월, 아들의 '뇌사'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이타적이었던 아들의 성정을 잘 알고 있던 아버지 홍 씨는 큰 결정을 내렸지만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폐인의 삶을 살아야 했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하 본부)는 지난 7월 1일, 서울특별시의 지원으로 CCC 순상담센터와 홍우기 씨와 같은 뇌사 장기기증인의 유가족 '도너패밀리'를 위한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8주간 진행되는 이번 심리지원에는 자녀 사별을 경험한 부모들 9명이 함께 했다.

지난 7월 29일, 5회 차 심리지원 프로그램이 진행되던 날은 홍우기 씨의 아들 홍윤길 씨의 기일이었다. 매해 아들의 기일이 되면 더욱 깊은 그리움에 사무친다는 홍우기 씨는 이날 교육에 참석해 "같은 슬픔을 경험한 분들과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것이 회복에 가장 큰 도움이 됐다"면서 "가족을 잃은 상실의 아픔을 누구보다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12년 전 여름, 딸 여은영 씨를 떠나보내며 장기기증을 결정한 도너패밀리 이복주 씨 역시 사별 후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이 씨는 "딸이 떠난 후 마음 둘 데 없이 하루하루 버거운 삶이었다"면서 "딸을 잃은 아픔은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채 가정을 돌보는 데만 열중하느라 정작 내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19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은 자신의 슬픔을 온전히 마주하고, 같은 아픔을 경험한 구성원들과 사별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또한 콜라주 작업으로 '고인에게 차려주고 싶은 밥상'을 만들고, 유품을 준비하여 고인이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교육을 기획한 CCC순상담센터와 본부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유가족들이 심리적, 정서적 치유를 경험할 뿐 아니라 기증인이 남기고 간 사랑의 가치를 거름 삼아 건강한 미래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 국내 뇌사 장기기증인은 2016년 573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후 조금씩 감소하다 지난해 405명으로 최근 10년 중 가장 저조한 수치를 보였다. 올해는 지난 6월까지 266명으로 2022년에 비해 약 24% 정도 증가했다. 지난해 말 기준 이식대기 환자는 4만 9000여 명으로, 하루 평균 7.9명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생을 마감하고 있다. 이에 본부는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서 장기기증인 유가족 예우 및 심리 회복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장기기증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사회 전반에 퍼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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