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브(AJAB) 운동과 한국교회

아자브(AJAB) 운동과 한국교회

[ 논설위원칼럼 ]

박호용 목사
2022년 10월 24일(월) 14:39
올해 2022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 505주년을 맞는 날이다. 필자는 이 날을 기점으로 아자브(AJAB) 운동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아자브(AJAB)란 'Again Jesus(다시 예수), Again Bible(다시 성경)'의 이니셜로써, 아자브 운동(AJAB Movement)이란 '복음 운동', 즉 종교개혁(Re-formation)의 구호인 "근원으로 되돌아가자"(Ad fontes!)의 핵심인 '다시 예수 그리스도(solus Christus)로 되돌아가자', '다시 성경 말씀(sola scriptura)으로 되돌아가자'에 대한 '다시 말하기'(Re-telling) 운동이다. Again(다시), 즉 리(Re-) 운동으로서의 아자브 운동은 '세 가지 바꾸기' 운동이다.

첫째, '주어 바꾸기' 운동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바울 복음'의 재발견(Rediscovery), 즉 '하나님의 의'(롬 1:17)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중세 가톨릭교회가 인간을 주어로 하는 '능동의 의'(인간의 행위와 공로가 포함된 의)를 하나님을 주어로 하는 '수동의 의'(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의)로의 주어바꾸기 운동이었다.

오늘의 종교개혁은 '바울 복음'보다 더 근원인 '예수 복음'(특히 요한복음서)의 재발견에 있다. 그것은 예수 선포의 핵심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소위 천당(天堂) 개념, 즉 인간을 주어로 하는 '능동의 나라'(내가 어느 곳으로 '가는' 나라)에서 하나님을 주어로 하는 '수동의 나라'(하나님이 인간 세상으로 '오는' 나라)로의 주어바꾸기 운동이다. 이것은 '회개' 개념의 변화, 즉 '내 마음을 바꾼다'는 '회심'의 의미보다 하나님이 왕이 되어 통치하시러 오시기에 그동안 내가 왕이거나, 또는 내가 왕 삼았던 것을 바꾸어 하나님(주어)을 왕 삼는다는 '주어의 교체'를 의미한다.

둘째, '신학 바꾸기' 운동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황과 교회의 영광을 강조하는 중세 가톨릭의 인본주의적 '영광의 신학'에 대해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신학'이라는 신본주의적 '십자가의 신학'으로의 '신학 바꾸기' 운동이었다.

오늘의 종교개혁은 십자가의 신학에서 '부활의 신학'으로의 신학 바꾸기가 필요하다. 그 까닭은 지난 500년 동안 십자가 신학을 강조하다가 또 하나의 복음의 축인 부활의 신학이 약화되어 복음의 균형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제자의 길(십자가의 길, 마 16:24)을 바로 가려면 '부활 복음'의 능력이 필요하다. 제자들이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다 무너진 것은 죽음의 강을 건넌 부활 신앙에 대한 체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활을 체험하고 난 이후 제자들은 세상과 죽음을 이긴 순교로서 제자의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었다(요 21:1~19; 행 9:1~19).

셋째, '기준 바꾸기' 운동이다. 성경 66권 가운데 '복음 중의 복음'인 요한복음 3장 16절의 중요성은 바로 '기준 바꾸기'에 있다. 이전까지의 모든 기준을 다 폐하고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 즉 성경 말씀(요 1:1,14; 5:39)을 기준으로 하자는 것이다(구원과 멸망, BC와 AD). 이보다 더 큰 혁명은 세상에 다시 없다.

20세기 최고의 과학혁명공식은 핵폭탄 제조의 기본공식이 된 아인슈타인의 E=mc2이다. 그런데 이 공식은 인류를 불행에 빠뜨린 '죽음과 파괴' 공식이다. 필자는 21세기 신학혁명공식으로 P=BJ2 (P는 Power or Peace, B는 Bible, J2은 Jesus in John)을 말하고자 한다. P=BJ2 공식은 영원한 '생명과 평화' 공식이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그리스도 예수에 성경 66권이 곱해질 때 그 힘(평화)은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힘(평화)이 된다. 예수(말씀) 혁명! 그래서 "다시 예수! 다시 성경!"이다. "다시 복음으로!!"



박호용 목사 / 전 대전신대 교수, 현 아자브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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