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갈등을 조정할 능력이 있는가?

교회, 갈등을 조정할 능력이 있는가?

[ 논설위원칼럼 ]

박재필 목사
2022년 10월 17일(월) 08:07
우리 한국교회는 과연 갈등을 조정할 의지가 있고, 그만한 능력을 갖추었는가? 총대로서 총회를 지켜보면서 느꼈던 소회 중의 하나는 발언들 속에 건강한 토론과 토의보다는 분노와 갈등을 부추기는 사례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총대가 되면 여러 교회의 분규와 관련되었거나 재판에 관한 문자, 서신, 유인물, 책자들을 받는다. 매일 언론의 기사인 것처럼 꾸미면서 상호비방을 일삼는 문자와 기사들이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와 혐오감을 일으키게 한다. 교회 내에 분란이 일어나 교인들이 떠나도 교회는 중재할 이도 없고, 분쟁만 심해져서 건강했던 교회가 결국에는 초토화되는 것을 무수히 목격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갈등공화국'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갖고 있다. 전통적인 정치적 갈등, 지역 갈등, 이념 갈등, 노사 간 갈등에다 최근 세대에 이르러서는 세대 간의 갈등, 젠더 갈등 등이 심화되고 있는 시대이다.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들의 진단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비용이 대략 300조 원 가까울 것이라고 추산한다. 아무리 적게 잡는 통계에도 200조 원 어간을 잡는 보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2022년 우리나라 예산이 607조 원인 것을 생각하면 갈등관리비용이 가히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0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등 3개 분야 13개 항목을 조사한 갈등지수를 보면 우리나라 갈등지수는 멕시코, 이스라엘을 뒤이어 세 번째에 자리한다. 멕시코는 원래부터 활화산 같은 갈등이 유명했고, 이스라엘은 영토 내에 유대인과 아랍인이 공존하고, 팔레스타인 자치통치 지역들이 인접해 있어서 중동의 화약고로 불릴 만큼 갈등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의 바로 뒤에 있고, 갈등관리지수는 꼴찌에서 2, 3위에 있을 만큼 갈등관리를 못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갈등 관리만 잘해도 나라의 경제성장률을 3% 가까이 끌어올릴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의 20%가 그리스도인이고, 이 땅에 8만 개의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한 텔레비전 뉴스에 의하면 인구 7500만 명인 튀르키에는 국민의 95%가 이슬람 신자인데, 모스크(사원)는 6만 3000 처소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교회가 많다는 뜻이다. 그렇게 교회는 많지만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왜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는가? 너무나도 기본적인 질문이다. 답은 정해져 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의 육체로 허시고"(엡 2:14).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6). 예수의 십자가는 갈등을 해소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예수의 희생은 원수 된 것을 소멸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그 사명을 갖고 교회를 세워가야 하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교단은 분열되고, 같은 총회 안에서도 혐오증후군은 독려되고 있다. 개 교회들은 지역사회에서 화평과 화목의 상징이라기 보다는 싸우는 곳의 대명사로 전락하고 있다.

이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화평을 만드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 총회도 갈등을 치유하는 일에 힘을 모아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역량을 발휘하길 기대해 본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화목하게 사는 사명을 받았다는 소명을 잊으면 안 된다.



박재필 목사(청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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