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vs. 목회돌봄자

설교자 vs. 목회돌봄자

[ 논설위원칼럼 ]

김승호 교수
2022년 08월 08일(월) 12:53
목회자는 목양, 즉 목회 돌봄으로 부름 받은 자이다. 목회 돌봄이란 목회자가 회중을 개인적으로 돌본다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다. 그런데 교회 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교회의 목회 돌봄은 성도 각자를 개인적 차원에서 돌본다는 의미에서 회중 전체를 집단적 차원에서 돌본다는 의미로 전환된 측면이 있다. 목회자의 목회 돌봄이 성도들을 개인적으로 돌보는 시간보다는 설교 준비에 쏟는 시간이 더더욱 비중 있게 여겨지는 작금의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목회 돌봄에 대한 목회자의 이런 인식 변화는 교회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지만, 효율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시대사조가 반영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성도가 목회자를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굳이 영적인 문제가 아니라 해도 목회자는 성도의 삶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의 상담자 역할을 기꺼이 자처했다. 농촌에서는 소나 염소 같은 가축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 때조차도 목회자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요즘 성도들은 개인적인 문제가 있어도 굳이 목회자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 목회자가 자신의 문제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직접적인 해결자는 목회자가 아니라, 의사, 변호사, 교사, 심리상담가 등 여타의 전문직 종사자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한, 목회자로부터 받는 목회 돌봄의 수혜를 자신이 목회자의 시간을 빼앗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는 목회자를 배려하는 순수한 의도라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성도가 목회자를 개개인을 위한 목회돌봄 수행자가 아니라 회중을 위한 설교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문제는 '개개인'을 만나는 기회를 최소화하면서 '회중'을 대하는 기회를 극대화하는 습관이 몸에 배면, 한 영혼을 인격체로 보는 시각이 목회자에게 흐릿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첨단 의료기술을 자랑하는 현시대에도 의사는 여전히 환자를 '무리'로 대하지 않고 '개인'으로 대한다.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예외는 없다. 그래야 개인의 질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개인에게 알맞은 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설교가 회중을 대상으로 하는 목회돌봄의 측면이 있지만, 회중을 대상으로 하는 설교와 개인적 만남을 통한 목회 돌봄은 분명 다른 점이 있다. 신학자 데이비드 포드(David Ford)는 공관복음에 나타나는 예수 사역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일대일 대면, 함께 하는 식사, 말로 하는 복음 전파. 이 사역은 모두 개인과의 만남을 토대로 하고 있다.

성도 개개인에 대한 목회자의 목회 돌봄은 위대한 설교로 대치될 수 없다.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교자라 해도, 진심으로 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기회를 잃어버린 목회자는 설교 기술자는 될지언정 참된 예수의 제자는 될 수 없다. 파편화되고 황폐화된 시대에, 성도와의 일대일 만남은 목회자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역이자 동시에 목회자의 삶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문제로 고민하는 개인을 적극적으로 찾아가야 하며, 고민하는 개인이 목회자를 찾아오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문제 가운데 빠진 자를 찾아가 직접적인 대면을 통하여 그에게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공해주셨던 예수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김승호 교수 / 영남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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