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문과 할머니 마음 문

냉장고 문과 할머니 마음 문

[ 논설위원칼럼 ]

김종생 목사
2022년 07월 04일(월) 08:20
네덜란드인들에게 자유와 독립의 아이콘이 된 페테르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라는 작품속에 늙은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을 빠는 그림이 있다. 초창기 외설시비에 휘말렸는데 그림 속 남녀는 부녀사이다. 늙은 노인 시몬은 로마제국에 저항하다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아 투옥된다. 로마제국은 노인을 체포해 감옥에 넣고, 가장 잔인한 형벌인 죄수를 굶겨 죽이는 아사형(餓死刑)에 처한다. 마침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 페로가 매일 같이 아버지를 면회하면서 그때마다 간수의 눈을 피해 아버지에게 젖을 물려 생명을 이어갔다. 이 같은 사연을 전해들은 로마제국의 책임자는 딸의 효심에 감동해 결국 시몬을 석방했다고 한다. 작품은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교훈을 준다. 진실을 알지 못하면서 단지 눈에 보이는 사실만으로 남을 비난하고, 상대방의 행동과 사물과 현상을 내 마음대로 재단하여 단정지어 버린다. 흔히 사실은 육체의 눈으로 보고, 진실은 정신의 눈으로 본다고 한다.

이 그림을 두고 '포르노'라고 비하하기도 하고, '성화'라고 격찬하기도 한다. '노인과 여인'에 깃든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평가를 절하하고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림 속에 담긴 본질을 알고 나면 눈물을 글썽이며 명화를 감상한다.

오래 전 복지관에 관계하며 밑반찬서비스 사업을 수행할 때 있었던 일이다. 홀로 사는 어르신과 부모 없이 가장으로 살아가는 소년소녀가장 그리고 장애인가정 등에 한 주간 정도 먹을 수 있는 밑반찬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교회가 돌아가며 당번이 되었고 여 집사님이 밑반찬을 가지고 홀로 사시는 할머님 댁에 다녀온 뒤 무엇인가 할 말이 있어 보여 대화의 자리를 가졌다. 자신이 가져간 반찬은 김치와 단단하지 않은 콩자반과 미역무침이었는데 할머님 댁에 도착하여 냉장고를 열어보니 멸치조림과 햄 캔이 있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여유가 있는 할머님 댁에 굳이 그만 못한 밑반찬을 놓고 오려니 미안하기도 했고, 밑반찬 제공 서비스의 대상자 선정이 잘 못된 것 아닌가 싶다는 취지에서 보람이 아니라 의구심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떤 내용인가 감이 잡혀서 이렇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도 할머님 댁에 배달해 놓은 멸치조림은 치아와 잇몸이 약해진 할머니로서는 드실 수 없었을 것이고, 햄은 부드럽지만 오랫동안 드신 전이나 부침개와 달리 느끼함으로 부담을 주었을 수도 있다. 고생하며 살아오신 할머니로선 배달해 온 반찬을 버리기 아까워 아마도 한동안 냉장고에 보관해 오신게 아닐까 싶다고 말이다. 그리고 한마디 첨가하길 "냉장고 문만 열어 보셨네요? 할머니 마음 문은 열어보시지 않고!"

이러한 섬김 사역이 아니어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 경험과 지식 그리고 나의 관점에 따라 얼마나 쉽게 예단하고 단죄해 왔던가? 냉장고의 보관된 반찬을 가리키며 이것은 팩트라고 주장해 왔다. 물론 멸치조림과 햄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몇 날이고 몇 주간이고 냉장고에서 그냥 그렇게 방치해 두었을 것이다. 뒤돌아서서 밑반찬서비스 프로그램의 무용론을 이곳 저곳에서 당당하게 설파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온전한 진실에 이르지 못한 채 단지 눈에 보이는 사실만으로 남을 판단한다. 그러나 사실을 넘어 진실을 알면 관점이 달라진다.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고백했는데 보이지 않는 본질에 접근하려는 노력과 입장이 절실하다. 냉장고의 보이는 반찬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할머니 마음을 애써 이해해 보려는 관점이 교회가 소중히 간직할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김종생 목사 / 소금의집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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