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 게임

패러디 게임

[ 시인의눈으로본세상 ]

이재훈 시인
2021년 10월 13일(수) 10:00
패러디 시즌이 시작되었다. 온갖 정치 패러디가 집 나간 삼촌처럼 돌아오고 있다. 탐욕의 비유는 그럴 듯하다. '성남의 뜰'은 카페 이름인 줄 알았다. '화천대유(火天大有)'는 기름집 이름인 줄 알았으며, '천화동인(天火同人)'은 시쓰는 동인 이름인 줄 알았다. 무협지에서 흔히 들을 법한 이름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거창하다. 이들 이름은 유교의 경전 중 하나인 주역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천화동인은 불길이 하늘과 만나듯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며, 화천대유는 해가 만천하에 내리쬐는 형상으로 많은 것을 얻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들의 '뜻'은 '탐욕'이며, '얻을 것'은 '돈'이다. 권력자들이 해먹은 돈은 패러디로 승화되어 절찬리에 유포중이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를 "여러분, 화천대유 하세요"로 변주한다. 부제는 '3억 5000만원이 4000억원이 되는 마법'이란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에 게임'이 전 세계에 열풍이다. 정치인의 아들 퇴직금을 패러디한 '오십억 게임'도 삽시간에 퍼졌다. 유력 대선 주자 정치인의 이름을 딴 '○○○ 게임'도 여러 버전으로 돌아다닌다. 예능프로그램 SNL코리아의 정치 풍자 코미디에서는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패러디한다. 이 게임은 참가자들을 죽이는 장면을 패러디한다. 이 연출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풍자하고 있다. 또한 정당을 풍자하는 '도서출판 내로남불', '더불어부동산', '국민의짐' 등도 회자된다.

온라인에서는 패러디 게임 중이다. 각종 패러디가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서 급속도로 소비되고 있다. 쉽게 제작되고 쉽게 소비되고 사라진다. 인터넷 짤이나 밈(meme)과도 결합되어 더욱 우스꽝스럽게 유포되고 있다. 패러디는 당대 사회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가장 첨단의 언어로 재미를 더하여 대중들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는 풍자의 언어다.

패러디는 원래 문학에서 시작한 수사법이다. 잘 알려진 원전을 의도적으로 모방하여 풍자하고 조롱하는 방법으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현대에는 문학뿐 아니라 각종 예술,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국민들의 애송시인 김춘수의 '꽃'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장정일 시인은 김춘수의 시를 "내가 단추를 눌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전파가 되었다"('라디오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라고 꽃을 라디오로 패러디하였다. 꽃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라디오라는 일회성으로 변주하여 현대인의 인스턴트 같은 사랑을 풍자했다.

안도현 시인의 짧은 시 '너에게 묻는다'의 전문은 이렇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한 맥주광고에서는 이 시를 패러디하여 '너에게 붓는다'라고 광고한 적이 있다. "맥주캔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시원한 사람이었느냐"라고. 이미 패러디는 광고에서도 중요한 방법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 개그 프로그램 등은 패러디를 흔한 방법으로 사용한다.

풍자는 대중들을 웃게 만든다. 풍자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바로 '골계미(滑稽美)'이다. 골계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나 인간들의 온갖 행태를 보여주면서 재미를 준다. 그 재미를 통해 교훈을 주는 미적 방법을 골계미라 한다. 우리의 마당극이나 판소리는 골계미를 바탕으로 당시 부패한 나라, 양반 계층 등을 통렬히 비판한 작품들이다.

대중들이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은 웃으면서 대상을 조롱하는 것이다. 가난한 백성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권리가 바로 권력자들을 조롱할 수 있는 자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롱도 아까운 마음에 허탈감에 빠져 패러디마저도 재미없어지고 있다.



이재훈 시인/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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