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연재 '작은자운동 45년'

여전도회 연재 '작은자운동 45년'

[ 여전도회 ]

한국기독공보
2019년 12월 19일(목) 08:56
작은자금식기도회는 작은자를 기억하며, 1식 금식하고 그 금액을 작은자를 위해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2012년 시작되었으며, 매년 11월과 12월 중에 지연합회 및 시찰별로 금식기도회를 드리고, 모아진 후원금을 작은자를 위하여 사용하고 있다. 매년 약 700만 원 정도가 모금되고 있다. 작은자운동이 자리를 잡으면서 지역의 작은자들이 겨울을 잘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14년 11월 약 1300 포기의 김장을 하여 10Kg 약 460여 박스를 작은자 청소년가정과 독거노인가정, 지원이 필요한 시설에 전달되어진다. 이처럼 다양한 모금을 통해 작은자들을 돕고 있으며, 앞으로도 시대에 맞는 모금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모금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려고 한다.

작은자운동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자체적으로 소식지를 만들어 후원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제일 정확한 방법이다. 또한 초창기 소식지는 예장통합, 기장, 감리교, 구세군이 함께 사업을 공유하는 장으로 활용하였다. 필요에 의해 매월 발행하기도 하였으나 우편발송의 비용 증가로 분기마다 발행하고 있다. 과거 '선교와 사회복지'를 발송하는 날이면 후원자들이 찾아와 발송 작업을 하며, 작은자운동에 대한 의견도 나누고, 후원회 회원 간의 관계도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도회전국연합회와 병합하면서 공간의 제약으로 후원회의 모임이 원활하지 않아 점차 발송업체를 통해 발송하게 되었다. 앞으로 소식지를 통해 좀더 체계적인 정보 전달과 투명성을 확보하는데 그 역할을 다하려고 한다.



지연합회들의 합창

작은자운동이 지연합회의 적극적인 참여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북연합회에서는 매년 1회 작은자 10명을 초청하여 선물을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며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물은 본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지원한다. 연합회의 관심은 작은자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으며, 시간이 지나 청년이 되어 그 때를 기억하는 아이들이 있었으며, 서울북연합회의 참여로 작은자들에게와 본 재단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아이들이 참여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본 재단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용천연합회는 작은자를 위한 음악회를 2006년부터 매년 9월에 개최하고 있다. 작은자 후원 선교 음악회는 지교회에서 매년 15팀 이상 참여하여 찬양을 하는데, 참여하기 위해서는 10만원을 내야 한다. 연합회의 화합도 다지지만 작은자를 위한 기도와 찬양의 시간을 통해서 여전도회 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작은자운동을 알리고 있다.



법인설립과 사회복지시설 운영

작은자운동이 확장되기 위한 방안으로, 특별히 연곡작은자의집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법인 설립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1996년 손의성 간사가 작은자복지선교회 20년사 집필과 사회복지법인 설립을 위해 입사하였다. 처음에는 연곡작은자의집을 통하여 법인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시설로서의 부족한 부분들에 수리를 해야 했고, 기본재산으로 3억원을 요청하여 법인설치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호남작은자의집을 통해 법인설립을 추진하여 1999년 10월 시설운영법인 인가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1999년부터 2006년까지는 작은자복지선교회와 예장여전도회작은자복지재단이 동거를 시작했다. 같은 이사들이 오전에는 작은자복지선교회의 회의를, 오후에는 법인 시설을 위한 회의를 진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2006년 7월부터 작은자복지선교회의 결연사업과 그에 따른 사업들을 법인의 사업으로 전환하여 운영하였다. 직원들도 작은자복지선교회 직원에서 여전도회작은자복지재단의 직원으로 전환되었다. 두 기관의 사업이 하나가 되면서 여전도회작은자복지재단은 시설운영 법인이면서 지원법인의 사업도 진행하게 되었다.

작은지운동을 펼치면서 도움이 필요한 작은자가 있는 경우는 그 가정을 방문하고 돌아보는 일정이 있었다. 그러던 중 장애인가정을 도와야 하는 상황들을 보면서 공동체를 세우고 그 장애인을 모시고 잘 돌보면 그것이 가정을 살릴 수 있는 방법임을 확신하고, 시설을 준비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던 중 경기도 양주군에 위치한 두레교회 한응수 목사로부터 부지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황화자 총무와 주선애 교수가 부지를 방문한 후 공동체를 세우기로 하였다.

한응수 목사 가족과 서홍석 장로를 중심으로 30평의 조립식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1989년 4월 정만진 씨 가족을 첫 입주가족으로 하여 공동체가 시작되었다. 공동체 명칭은 연곡작은자의집이었고, 담당간사는 종암교회 이승재 씨가 간사로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이후 장애인 만이 아닌 가출청소년, 독거노인, 부랑인, 출소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입소하여 생활하였다. 이 곳에서는 손을 놓고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휠체어를 타고 상체가 건강한 사람은 숫가락을 사용하지 못하는 뇌성마비 장애인의 식사를 도왔으며, 편마비 장애가 있지만 설거지를 도왔고, 신체가 건강한 경우는 휠체어를 밀어주는 등 장애가 있어 불편하지만 서로 돕고 협력하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입소인들이 많아지면서 직원도 더 필요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정부의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시설인가를 준비하였으나 사회복지법인을 만들고, 시설을 규격에 맞게 리모델링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 여전도회전국연합회와 병합을 논의하면서 연곡작은자의집은 1992년 총회산하 사회복지법인 자선사업재단에 신탁하기로 하고, 추후 사회복지법인이 설립되면 찾아오기로 하였다. 시설 인가를 위해 필요한 여건은 작은자복지선교회에서 지원하여 1998년 시설인가를 받아 현재 장로교복지재단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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