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연재 '널다리골'

여전도회 연재 '널다리골'

[ 여전도회 ]

한국기독공보
2019년 10월 17일(목) 16:59
3~7절에는 왕이 멀리해야 할 사항에 대한 권고가 나타나 있다. 그중에서도 3절에서는 왕인 아들이 주의해야 할 대상으로서 여인이 언급된다. 여기에서 '힘'이라고 번역된 '하일'은 남성의 능력을 상징한다. 왕은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 독신을 주장하거나 금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관계에 있지 않는 여성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자신의 직무를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여인에 대한 경고는 잠언서에서 중심요소 중 하나로 등장하는 주제다(2:16~19; 5:1~23; 6:20~35; 7:1~27; 또한 신 17:17; 삼하 12:9,10 참조). 그것은 그가 망하는 길이다. 여성에 사로잡히게 되면 왕의 판단이 무뎌진다. 다윗과 밧세바의 관계가 그러했고, 솔로몬의 수많은 후궁들이 그러했다. 그것은 술이 주는 폐해와 유사하다.

따라서 어어지는 단락(4~7절)에서 포도주와 독주에 대한 경고로 이어진다. 4~5절에서는 두 번의 반복을 통해서 왕이 해서는 안 될 일을 강조한다. 그것은 술을 마시는 일이다. 음주에 대한 권면도 잠언서 여러 곳에 등장한다(20:1; 21:17; 23:20, 29~35). 여기에서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그러한 권면을 하는 이유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왕이 마땅히 행해야 하는 올바른 판결과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포도주와 독주가 주는 폐해는 법을 잊어버리고 곤고한 자들의 판결을 굽게 하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는 이러한 문제를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왕상 16:9; 20:16; 전 10:16; 에 1:10, 11; 사 5:22~23; 28:7; 56:12; 호 7:5; 미 2:11; 또한 막 6:21~28; 딤전 3:3; 딛 1:7 참조). 그래서 독주나 포도주는 망하게 될 자와 마음에 고통이 있는 자에게나 주어야 한다(6절). 왜냐하면 그들은 술을 통해 그들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7절).

마지막 단락(8~9절)에는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훈계하는 가르침에 핵심이 나타나 있다. 앞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부정적인 권면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마땅히 해야 하는 긍정적인 권면이다. '입을 열라'는 표현이 각 절의 처음에 등장한다. 두 번 반복을 통해 강조된다. 말을 통해 '변호하고 지지하라'는 적극적인 권면이다. 8절에는 변호해야 할 대상이 두 가지로 표현된다. '말 못하는 자'와 '힘없는 자들'이다. 상반절의 내용을 하반절에서 부연설명하는 평행법적인 진술이다. 말 못하는 자라는 것은 할 말이 있어도 자신을 변호할 수 없는 사회의 약자를 말한다. 보호받지 못하면 사회에서 존재의 근거를 갖지 못하고 사라져 버릴 힘없는 자들을 가리킨다. 왕들을 이들을 위해 입을 열어야 한다. 9절에서도 동일한 내용의 반복이다. 여기에서는 '공의로 재판할 것'을 권면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위해 판결하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가난하고 궁핍한 자'는 가진 것 없고 힘이 없어서 보호되지 않으면 사회에서 눌리고 소외될 수밖에 없는 사회 약자를 가리킨다. 두 개의 개념으로 하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이사일의(二詞一意) 중언법이다.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수없이 강조되는 바다. 구약성경에서 약자를 돌보는 것은 공평과 정의를 이루는 길이다(사 1:17; 21-23,26~27). 이러한 공평과 정의의 삶은 지혜를 찾을 때 깨닫게 되는 것이다(잠 2:9). 또한 이것은 왕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16:10; 25:5; 29:4, 14; 시 72:12~14; 렘 22:15~19).

이러한 삶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요구하셨던 바이다. 창세기 18장 18~19절에서 창세기 12장 3절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18절에 이어 19절에서 이렇게 소개된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여기에서 '구약성서 윤리의 정수'이며 '중심 가치'라 할 수 있는 '공평과 정의'가 한 쌍의 개념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다윗(삼하 8:15, 참조. 왕상 3:6)과 솔로몬(왕상 10:9에 있는 스바 여왕의 말에서)의 통치에 대한 묘사에서 이스라엘 통치자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릴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이러한 모습은 다윗과 비교되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에 대한 평가 뒤에 놓여 있으며(왕상 15:11; 왕하 14:3; 16:2; 18:3; 22:2), 예언서의 다양한 본문에서 미래의 이상적인 왕의 모습이 이 용어들을 통해 묘사된다(사 9:6,7; 11:3~5, 참조. 32:1; 렘 23:5f; 33:15; 겔 37:24; 슥 9:9).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공평과 정의'의 삶은 이스라엘 왕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요구되는 삶의 모습이다. 예언자의 비판에서 "공평과 정의"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이 중심요소로 나타난다(예컨대, 사 1:21, 5:7, 58:2; 59:14; 64:5,6; 암 5:10~12; 암 2:7; 미 2:9~11; 7:3; 렘 5:28; 7:6; 2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강조하신 삶의 방식에서도 '공평과 정의'의 삶을 통해 이방에 빛을 비추는 사명을 확인할 수 있다(마 5:16; 6:33;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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