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역사적인 날

또 하나의 역사적인 날

[ 주필칼럼 ]

변창배 사무총장
2019년 07월 26일(금) 10:00
2019년 7월 1일은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날 일본정부가 반도체 소재 3가지 품목에 대해서 한국수출 제재조치를 내렸다. 일본은 수출제재 명분을 '한국과의 신뢰관계'나 '수출 관리를 둘러싼 부적절한 사안 발행'이라고 했지만,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직접 원인이다.

소송이 시작된 것은 1994년 12월 24일이다. 여운택 신천수 씨 두 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이 일제 식민지하에서 강제징용을 했던 신일본제철이 명칭을 신일철주금으로 변경한 것이다. 재판은 2001년에 오사카지방재판소, 2002년에 오사카고등재판소, 2003년에 일본최고재판소에서 줄줄이 원고가 패소했다.

2005년 2월 28일에 여운택 신천수 이춘식 김규식 씨 등 4명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2008년과 2009년에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으나 2012년 5월 24일 반전이 일어났다. 김능환 대법관을 주심으로 하는 대법원 제1부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고 파기 환송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뒤 2013년 7월 10일에 서울고법은 1명당 1억 원씩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2013년 8월에 신일철주금이 이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은 상고심 재판을 오랫동안 열지 않았다. 그 사이 2013년 12월에 원고 여운택 씨가, 2014년 10월에는 신천수 씨, 2018년 6월에는 원고 김규수 씨가 차례로 사망했다. 2018년 10월 30일 대한민국 대법원이 피해자 4명에게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라고 확정 판결할 때 마지막 생존자 이춘식 씨는 98세의 고령이었다.

강제징용 손해배상을 둘러싼 재판은 21년 만에 일단락되었으나 한일관계는 경색되고 있다. 이마이 정무비서를 비롯한 아베 신조 총리의 핵심 비서들이 사태를 주도하고 있다. 일본의 아소 다로 재무상이나 이마이 다카야 경제산업성 장관은 화이트 리스트에서 대한민국을 제외하거나 이민과 여행, 비자발급, 송금거래 제한 등 제재수단이 더 있다고 발언했다. 7월 21일 일본 참의원선거가 아베 정부의 승리로 끝났으나 사태 해결의 길은 요원하다. 반도체를 넘어서 스마트폰으로 확전되는 양상도 보인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반도체 생산기업이 대응에 나서고, 정부도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정당이나 언론도 입장에 따라서 다양한 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는 일본 여행 취소와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퍼지고 있다. 7월 1일부터 9일 사이에 일본 여행 예약취소율이 최대 80%에 달하는 여행사가 있을 만큼 폭발적이다. 젊은이들 사이에 취소 위약금을 독립자금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일본에서도 혐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강제징용 배상판결로 촉발된 한일간의 갈등이 양국과 세계경제에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반도체산업은 글로벌 분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두 나라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미중간의 무역전쟁으로 몸살을 앓은 세계경제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전통적인 한미일 안보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도 있다.

한일 간의 긴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에 시작되었으나 21세기는 20세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인구규모는 세계 28위에 해당하나 국민총생산(GDP)은 일본이 약 5조 700억 달러로 3위, 대한민국이 1조 6500억 달러로 11위이다. 인구 1인당 총생산액은 일본에 근소한 차이로 뒤질 뿐이다. 우리나라는 수출액에서 중국 미국 독일 일본에 이은 세계 5위이다. 우리나라 수출 신장률은 수년간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종교의 자유도 일본에 비교할 수 없이 발달했다.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기회로 삼고, 양국이 대등하게 협력하는 조정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일본이 평화헌법을 고수하면서 동북아 평화를 위하여 사과와 화해의 손을 내미는 성숙한 국가가 되기를 바란다. 비온 뒤에 땅이 굳듯이 양국이 선린우호관계를 회복하기를 기도한다.



변창배 목사/총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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