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연재 '널다리골'

여전도회 연재 '널다리골'

[ 여전도회 ]

한국기독공보
2019년 07월 25일(목) 10:03
하나님은 여자를 창조하시기 전 먼저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만드셨다(19절). 아담을 지으실 때 사용하신 것과 같은 재료인 '흙'으로 만드셨다. 그러나 동물들은 부분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도 '돕는 배필'은 될 수 없었다(20절). 그래서 하나님은 여자를 창조하셨다. 여자를 창조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남자를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시고 그에게서 갈빗대 하나를 취하셨다. 그리고 그 취한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셨다. 여자의 창조는 하나님의 마지막 창조행위로서 창조의 절정이며 완성이다. 하나님이 여자를 남자의 갈빗대([l'ce)로 만드신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해부학상으로 볼 때 갈비뼈는 인간의 소중한 내장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남자의 우월성이 아니라 여자의 소중함을 드러낸다. 여자는 남자의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남자의 생명과는 같은 귀중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또한 남자의 머리뼈나 발의 뼈로 만들지 않고 신체의 중심부에 위치한 갈비뼈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여자와 남자가 본질적으로 동등한 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자가 창조된 후 남자는 여자를 보고 다음과 같이 외친다(23절). "이제 이것이야말로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다." 여자를 향한 최고의 탄성이다. 이것은 여자를 향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말이요, 여자가 자신의 몸보다 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까지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24절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는 성서적 인간론과 부부관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남자와 여자가 상호의존적 존재임을 명백히 알 수 있다. 특별히 여자를 만들 때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돕는 배필'이라는 말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남자와 여자의 존재가치를 알 수 있다. '돕는 배필'은 히브리말로 '에제르 케넥도' (ADb.n
1) 이것은 우선 배필의 동등한 위치를 말한다.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면 그에게 어울리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물들은 아담의 돕는 배필이 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자가 남자의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다고 해서 종속적이거나 열등한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남자와 여자의 동등한 관계가 강조되어야 한다.

2) 또한 이것은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말한다. 서로가 없을 땐 완전한 모습이 될 수 없다. 서로가 있을 때 서로를 보완하여 완전함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때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돕는 배필'로서 한 몸을 이루어야 할 남자와 여자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선고를 듣는다(창3:16). 여자에게 부과된 심판선고는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머니로서 받을 고통과 아내로서 받을 고통을 말하고 있다. 먼저 어머니로서 겪을 고통은 임신과 출산의 고통이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은 본래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축복에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고통이 커졌다는 데에 있다. 자연스런 고통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증가된 것이다. 다음으로 아내로서 겪을 고통은 남편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여기에서 '욕망'으로 해석된 '테슈카' (hq'WvT.)는 '사모함'과 '그리움'이 있는 '욕망'(longing)을 뜻한다(창 4:7, 아 7:10). 이것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다 포함할 수 있다. 아내는 남편을 향한 바람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남편의 다스림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남자와 여자의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의 불평등한 관계를 갖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돕는 배필'과 함께 한 몸이 되어 살아야 할 부부의 관계가 지배와 피지배의 주종관계로 바뀌는 심각한 결과가 범죄를 통해 초래되었다.

특별히 두 번째 고통의 내용인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는 선고가 여성차별의 근거가 되곤 했다. 하지만 이 선고는 남자와 여자의 본래적인 관계가 아니라 범죄 후 선고받은 심판의 내용이다. 타락한 인간들에게 징벌로 주어진 결과이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남자와 여자의 이상적인 관계의 모습이 아니다. 또한 남편이 아내를 '다스린다'고 해도 그것은 일방적인 착취나 억압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다스림은 다스림의 대상이 행복하게 하는 선한 목자의 '돌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몸을 주셨듯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엡 5:25). 따라서 이것을 근거로 남자의 우월성을 주장하거나 여성차별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본문의 맥락과 의미를 벗어난 잘못된 이해를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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