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선의가 필요한 아이들

타인의 선의가 필요한 아이들

[ 기자수첩 ]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19년 07월 01일(월) 07:52
지난 2015년 12월, 11살 된 여자아이가 친부와 계모의 학대를 피해 2층 가스배관을 타고 맨발로 탈출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일명 '가스배관 탈출 아동학대 사건'으로 유명한 이야기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미쓰백'이 지난달 제5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다관왕을 차지하면서, 영화의 소재가 됐던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영화는 어린 아이에 대한 폭력 사례를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주는데 98분의 러닝타임 동안 불편한 마음을 감추기 힘들다. 아마도 아동학대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극적인 소재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영화 '미쓰백'의 아동학대 피해자 '지은'이는 '미쓰백'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면서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러나 현실 속 7살의 어린 아이는 소변을 흘린다는 이유로 욕실에 갇힌 채 청소솔로 폭행당하는 것도 모자라 락스 원액을 맞으면서 죽어갔고, 9살 난 여자아이가 새어머니의 상습적인 폭행과 반인륜적인 학대를 당하다가 내부 장기 파열로 숨졌다. 지난 1월에도 4살 여자아이가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알몸으로 벌서다가 숨졌고, 4월에는 여중생이 계부에게 보복성 살해를 당해야 했으며, 불과 보름 전에는 생후 7개월 된 갓난 아기가 부모의 방치 속에 굶어 죽었다.

영화 속 '지은'이가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미쓰백'이 지은이를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주민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신고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아동 학대 대다수가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대부분 부모에 의해 일어나는 만큼 부모의 '훈육'으로 치부되기 때문에 신고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타인의 선의'가 절실한 아이들을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 실제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아동학대 발생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아동학대로 46명이 죽었으며 그 중 41명의 아이가 죽은 다음에서야 신고가 됐다.

얼마전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한 의사가 아동학대 피해 가정을 방문해 도움을 주던 교회사람들이 생후 2개월 된 아기의 상태가 수상해서 급하게 응급실로 데려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검사 결과 아이의 사지 뼈가 전부 부러져 있었고 뇌골절과 뇌출혈 증상을 보였다.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한 아기는 부모와 격리될 수 있었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지만 '살았다'. 아이들이 더 이상 참혹하게 죽어가지 않으려면 '미쓰백'의 선의가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되어야 한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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