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 신앙

유비쿼터스 신앙

[ 논설위원칼럼 ]

정명철 목사
2019년 07월 01일(월) 00:00
'유비쿼터스(ubiquitous)'라는 단어는 언제 어디서도 어떤 기기를 통해서도 컴퓨팅 할 수 있는 현대 정보화 사회의 상징적 표현이다. 이 말의 어원인 'ubique'는 라틴어이며 '어디든지, 어느 곳에든지'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고백하던 고대의 신학용어였다. 그런데 정보화 시대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대변하는 단어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건물 내부 어디서나 컴퓨터 시스템에 연결과 접속이 가능하고 건물관리도 자동화되었다는 '유비쿼터스 빌딩', 그런 빌딩들이 모여 도시기능 전체를 컴퓨터 시스템으로 관리한다는 '유비쿼터스 시티'가 그런 말이다. 새로 짓는 교회당들만 해도 그렇다. 자동연결 와이파이에 음향과 화상, 주차시설을 비롯한 건물관리도 컴퓨터 시스템으로 이루어진다. 교적과 재정관리, 교인의 연락이나 소통 등도 컴퓨터 시스템을 편리하게 이용한다. 여기서 단순히 컴퓨터 시스템 이야기를 넘어 교회생활 자체도 편리함과 효율성을 앞세우며 '유비쿼터스한 교회'를 요구받고 있다.

문제는 신앙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신앙생활은 인간의 육체적 상황을 뛰어 넘는 영성의 문제, 영적 범주이다. 하나님과의 만남, 지속적 교제가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깊이 생각하며 그 말씀을 몸으로 기억하고 살아내려는 것이다. 그런 신앙과 영성의 범주에 과학과 기술이 빚어낸 기계문명, 컴퓨터 시스템은 얼마나 필요하며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걸까? 예배에 집중하려면 몸과 마음가짐이 반듯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시간에는 휴대전화도 끄고, 형제자매들과의 거룩한 교제를 위해 SNS나 검색도 잠시 접어두자. 찬송은 목소리와 전심을 기울여 불러야 하고 기도에는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인 자세처럼 마음도 내려놓아야 한다. 헌금시간에는 물질만 아니라, 내 삶을 드린다는 자세와 고백이 필요하다. 성경봉독과 설교에서는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아멘'의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예배마다 이런 의식으로 엎드리는가? 혹시 이런 걸 불편함과 비효율성이라 치부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런 자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고 주변의 아픔과 아쉬움에 응답하는 헌신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은 더욱 그렇다. 자신을 깊이 돌아보며 참회하고 결단하는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 섬김과 나눔을 통해 교회공동체의 부흥에 헌신하는 것, 삶의 자세와 신앙생활의 과정과 결과로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영적 영향력, 이런 것들은 편리함과 속도를 대변하는 컴퓨터 기계문명과는 결이 다르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깊이 품는 것, 그래서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며 세속욕망으로 채워진 자기생각과 삶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는 것들은 일의 빠른 성취와 만족감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현대적 유비쿼터스'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유비쿼터스는 속도와 편리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신앙의 유비쿼터스는 내 안과 밖, 내 삶의 자리와 거대한 역사의 구비마다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방향의 문제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게 '진짜 유비쿼터스'이다.

이런 저런 일들로 기독교 신앙의 진정성을 의심받는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를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정명철 목사/도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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