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더마이어 교수 "'확실성(믿음)'의 결여는 '분명함'으로 극복될 것"

순더마이어 교수 "'확실성(믿음)'의 결여는 '분명함'으로 극복될 것"

NCCK 에큐메니칼 선교포럼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19년 06월 03일(월) 12:36
지난 5월 31일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종교 폭력 관용-문화와 복음의 만남'을 주제로 강의한 세계적 에큐메니칼 선교 신학자 테오 순더마이어 교수(하이델베르그 대학교)는 종교, 폭력, 관용을 연계한 에큐메니칼 선교의 방향을 심도 있게 설명하며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먼저 유럽의 종교적 현실을 통해 종교의 형태를 소개한 테오 순더마이어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기성 교회들의 교인 수는 점점 쇠퇴해졌지만 우리는 다시 강성해져 가는 종교성의 형태를 구분할 때 생동감을 드러내는 '성령운동'과 폭력적이고 군사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근본주의'로 나눌 수 있다"며 특히 "종교의 의미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로마제국의 법, 특히 문화적인 것들로부터 받아들인 '종교'라는 개념과는 전혀 무관하게 사용되어지는 종교적인 면을 상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테오 순더마이어 교수는 종교와 사회, 종교적인 것과 사회적인 영역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종교의 생명력이 약화되고 있음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력'이 오직 종교의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종교의 중심이라고도 했다.

그는 "생명력으로서의 힘은 아주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만 찾게 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며 "그 하나님은 사람들이 기도로 만나기에는 너무 위대하고 멀리 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여러 가지 변형된 모습(샤머니즘)으로 나타나는데 일상적인 개념으로 '종교'라고 불려지는 초월적인 힘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테오 순더마이어 교수는 '권력과 폭력'을 설명하며 근본주의는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하나님은 믿는 이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명을 주시며 그 생명을 충만하게 하신다"며 하지만 이를 위해 "현실에서는 하나의 엄격한 생활방식을 기대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을 엄격하게 처벌하는데 이는 드라콘(성문법, 율법)식으로 영적으로 철저한 근본주의적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테오 순더마이어 교수는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람들이 표현할 믿음의 근본적인 내용 4가지를 손꼽았다. 그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한 믿음과 예수의 신성에 대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도래에 대한 믿음, 성서는 실제사건의 책이라는 믿음의 원리가 가장 중요하다"며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회적 관계나 관습, 모호함과 불안은 사람들의 믿음을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경향은 사람들을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거처를 찾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테오 순더마이어 교수는 '확실성(믿음)'의 결여는 '분명함'으로 극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성경의 진술은 분명하고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 분명함이 이룩되었다"며 "하지만 기독교 근본주의는 여전히 피도 눈물도 없이 자기들의 추종자들을 심판한다. 누가 정말로 바른 믿음을 가졌는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수많은 교회 공동체를 망가트린다"고 진단했다.

마지막으로 테오 순더마이어 교수는 교회적 관용에 대한 입장도 피력했다. 그는 "기독교는 자유롭고 열린 마음으로 유연한 근본주의를 만날 수 있고 또 만나야 한다"며 "이것은 기성교회에게는 분명한 도전이 되겠지만, 그들은 옛날 유럽의 신앙인처럼 그들의 신앙에 따라 철저히 살아야 하고 또 자신의 신앙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며 먼저는 자신의 신앙관을 확실히 세우는 것이 관용의 전제가 됨을 제시했다

한편 테오 순더마이어 교수는 다문화 사회 속에서 평화를 위한 교회의 자세도 소개했다. 그는 "다원화된 사회와 문화, 종교의 만남을 위한 관용적인 환경은 당연히 조성돼 있지 않다. 그러한 측면에서 관용은 교육되어지고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이라며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서는 '건설적인 관용'과 '상호 간의 관용'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특별히 그는 "건설적인 관용은 정보 대화에 필요한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고, 관용이 받아들여지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며 "건설적인 관용이 궁극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사회에서 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독재주의적 독재자에게서는 거의 기대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임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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