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사랑, 생명 교육

생명 사랑, 생명 교육

[ 논설위원칼럼 ]

박병욱 목사
2019년 05월 27일(월) 00:00
헌법재판소는 최근 낙태금지법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판결을 앞두고 낙태 찬성파와 반대파가 헌재의 정문 양쪽에 서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통계적으로 낙태죄의 존재 여부와 낙태율은 상관관계가 없다. 낙태가 불법인 나라라도 낙태율이 높은 나라가 있고, 낙태가 합법화되어도 낙태율이 낮은 나라가 있다. 낙태율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반비례한다. 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자기 인생을 사랑하는 자는 책임 있게 행동한다. 책임성 있는 사람이 다른 생명을 사랑할 수 있다.

직장에서 해외 근무 발령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 간 한 여고생의 경험담이다. 수업 시간에 낙태에 대해서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다양한 논쟁 중에서 몇 가지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혼전 임신 상태에서 남자 친구와 헤어진 경우, 강간을 당해서 임신한 경우, 태아가 기형아인 경우, 이런 이유들이 중복된 경우에 태아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질문이었다. 한국 여학생은 이 경우들이 모두 당연한 낙태의 이유라고 생각했고 그 의견을 피력했다. 그런데 그녀 외의 모든 학생들은 어떤 경우에도 출산을 하겠다고 했다. 여고생이 집에 와서 부모에게 이 토론을 말하면서 "이 나라 학생들은 생각하는 것이 나와 많이 달라요"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것이 교육의 힘이다. 우리나라에 생명 교육이 필요하다.

사람은 교육을 통해서 비로소 온전한 사람이 된다. 동물은 성장기간이 짧아서 금방 성숙한 동물이 된다. 그러나 사람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오래 성장해야 하고 배워야 한다. 사람은 교육의 양과 질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교육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나라가 지구 상에 또 있을까?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부러워했다. 교육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의 목적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시대 교육의 목적은 돈을 많이 버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 교육의 목적이 생명 사랑에 맞추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낙태는 사회가 약자를 지키는 기능을 잃어버린 현상이다. 낙태 논쟁이 권리 주장(자기결정권, 재생산권, 건강권, 생명권), 경제 논리(양육비, 경력단절), 죄책감 등의 단어로 표현될 때 태아가 생존 권리를 주장할 기회는 거의 없다. 국가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나 아직 출생하지 않은 태아는 기본권 주체로 인정될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약자인 태아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태아와 산모 모두를 지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라고 했다. 사랑이 사람을 만든다. 낙태 논쟁을 책임 윤리, 생명 사랑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낙태가 생명 사랑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누구든 사랑받는 아이로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는 가정, 사람이면 누구나 존중받는 사회, 생명의 가치를 그 어떤 가치보다 높게 여기는 사회를 향해서 나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생명 사랑이 없으면 수많은 논쟁과 다툼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세상 유행가에서 그렇게 많던 사랑은 다 어디로 가 버렸나? 우리가 사람의 생명을 천하보다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하나님은 책임지는 사랑을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하셨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는 하나님 당신 자신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셨다. 당신의 독생자를 버리면서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사랑받지도 않으셨는데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

생명체는 살아있는 것이 최고의 권리다. 살아있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다. 살아있는 것이 최고의 자랑이다. 사람은 존재 자체가 가치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당신이다.

박병욱 목사/대구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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