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바뀌고 있다

가정이 바뀌고 있다

[ 특집 ]

양희송 대표
2019년 05월 03일(금) 10:35
몇 년 전의 일이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족의 중요성'을 한껏 강조한 설교를 전했던 목사님은 예배 후 매우 난감한 추궁을 당하게 되었다. 회중들 가운데 그 지역의 사회복지기관을 운영하는 권사님이 계셨던 것. 그 권사님은 미혼모, 편부와 편모 가정 등 다양한 종류의 어려운 가정을 돌보는 일을 하던 분이었다. 그분이 듣기에 목사님의 설교는 소위 '정상 가족'을 이상으로 미화하면서, 나머지 모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결함과 결핍 속에 놓여 있는 불쌍한 존재로 만들어 놓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더란 것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정상 가족'들도 저마다의 상처와 갈등을 안고 위태롭게 지내고 있으며, '결손 가정'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자신들의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란 점에서 목사님의 설교가 그리는 이상적 모습은 여기에도 없고, 저기에도 없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 되고 만다고 했다. 전형적인 가정의 달 설교가 회중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자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책감과 낙담과 상처만 덧나게 하고 있다고 아픈 지적을 했다.

그렇다. 가족이 바뀌고 있다. 한편으로는 해체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구성되고 있다. 가정의 달을 지내는 교회의 관심사도 이런 흐름을 세심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 1인 가구가 급속히 늘고 있다. 교회 내에는 싱글들이 증가하고 있다. 아니 사실은 정상가족 중심의 교회 분위기로 인해 싱글들이 교회로부터 이탈하고 있다. '가나안 성도'를 자주 만나는 나는 교회 내 싱글들의 고충이 가장 흔한 이탈 동기 중 하나라고 듣고 있다. 교회 내 가족들의 현실은 부부관계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기러기, 별거, 이혼, 사별, 재혼, 독신 등으로 분화되고 있고, 부모와 자식 관계를 중심으로 보면 편부, 편모, 소년소녀 가장, 조부모 동거 가정, 무자녀 가정, 입양 가족, 재혼 등에 의한 복합 가정 등으로 한없이 번져가고 있다. 노인세대는 또 어떤가? 과거처럼 자녀 중 누군가가 모신다는 개념은 희박해지고 있고, 노인들도 비교적 건강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원한다. 양로원, 요양원, 혹은 호스피스 등이 어떤 삶의 경험과 질을 제공하는지 예전과는 다른 주요한 관심거리가 되었다. 또한 청년들의 공동주거, 가족단위의 공동주택, 귀농귀촌 공동체 등의 시도에서 보듯 함께 사는 사람들의 구성이 바뀌기도 하고, 고령사회로 전환하는 흐름을 따라 노인을 돌보는 일과 청년주거를 함께 해결하는 그룹홈 같은 시도가 나오기도 한다.

돌아보면 성경의 공동체는 혈연을 따른 가족주의나 민족주의 등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가족이요, 새로운 나라가 되었다는 선포를 흘려 들어서는 안된다. 지상의 교회 공동체가 결국은 혈연, 지연, 학연, 계급 등의 연고를 따라 나뉘고 연결되는 공간이라면 안타까운 노릇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됨을 증거하는 일은 말보다 행동이 더 크게 웅변하는 법이다.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근저에는 가족을 어떻게 형성하고 유지하느냐는 질문이 놓여 있다. 한국사회의 변화는 신속하고 과감하다. 교회가 그 흐름 속에서 해체되어 가는 정상가족의 이념을 가장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곳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신약 공동체가 협소한 민족주의나 혈연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방식의 형제자매됨을 선보였다면 다른 어느 곳보다 교회가 그에 부합하는 강력한 증거가 되어야 마땅하다. 서로 함께 살 수 없는 사람들이 한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장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만은 아니다. 초대교회가 당대의 사회로부터 주목받고 칭찬받았던 이유가 "보라, 저들이 어떤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가?"하는 탄성 속에 잘 드러나 있다.

한국사회가 아래로부터 붕괴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짙은 요즈음이다. 교회는 과연 어떤 공동체성을 이 땅에 드러낼 수 있을까? '가정의 달'은 우리의 가족이 처한 현실을 정직하게 조명하고, 기독교 신앙 공동체는 어떤 새로운 형제자매됨을 매력적으로 소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느끼는 갈증이 교회에서 해갈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어찌 주님 앞에 나아오지 않을 것인가? 모든 민족과 방언 중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나아오고 있다. 가정의 달은 복음의 그 넓고도 폭발적인 능력을 담아낼 새로운 틀을 고민할 때이다.

양희송/청어람ARM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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