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경(鳳卿) 이원영 목사 생가, 제36호 한국기독교사적으로

봉경(鳳卿) 이원영 목사 생가, 제36호 한국기독교사적으로

지난 4일 지정예식 가져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9년 04월 18일(목) 11:46
지난 4일 이원영 목사 생가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사적 지정예식 모습.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역사위원회및삼일운동백주년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서원수)는 지난 4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이원영 목사 생가에서 한국기독교사적 지정예식을 가졌다.

제36호 한국기독교사적으로 지정된 봉경(鳳卿) 이원영 목사 생가는 그가 태어나 성장한 곳으로, 지난해 10월 2일 총회 한국기독교사적 지정이 인준되어 총회장 림형석 목사가 지정 공포한 바 있다.

이날 경안노회 역사위원회 서기 정재훈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감사예배는 박효일 장로(화목교회)의 기도, 이성덕 장로(안동서부교회)의 성경봉독, 이위철 목사(경안노회 노회장)의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리라' 제하의 설교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지정식은 정우 목사(역사위원회 사적지분과장)의 사회로, 임한섭 목사(역사위 서기)의 경과보고, 임희국 교수의 사적소개, 서원수 목사(총회 역사위원장)의 지정 공포 및 증서전달, 우영수 목사의 권면 순으로 진행됐으며, 제3부 '축하와 인사' 시간은 이정우 목사(안동서부교회)의 사회로 김승학 목사(안동교회)와 권영세 안동시장의 축사, 김재봉 장로의 인사, 강정구 목사(와룡교회)의 이원영정신문화계승사업회 경과보고, 이정순 권사(대봉교회)의 유족대표 인사의 순으로 진행됐다.


표현모 기자



#봉경(鳳卿) 이원영 목사는?

1886년 생인 이원영 목사는 어려서 한학과 신식 교육을 모두 접하며 민족의식을 키웠으며, 1919년 3월18일 예안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옥중에서 이상동 장로의 전도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됐다. 출옥 후 안동성경학교,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영주 중앙교회, 이산의 용상교회, 신세교회(현 동부교회), 안기교회(현 안동서부교회) 등에서 목회했다.

일제의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요구 거부로 1938년 목사직 시무사면을 당했으며, 1939년 5월부터 8.15광복까지 예비검속이란 형식으로 수개월씩 4차례나 구금되었다.

광복 후 경산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경안노회를 복구하고, 경안고등성경학교(현 경안신학원)를 설립(1946)하여 교역자 양성에 힘을 쏟았으며, 안기교회를 안동서부교회로 이름을 바꾸어 복구했다.

1954년에는 제39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 추대되어 신사참배 취소성명을 발표했으며, 1958년 6월21일 7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정부에서는 1980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으며, 1999년 11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제2묘역에 이장됐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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