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꽃길을 걷는다

나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꽃길을 걷는다

[ 목양칼럼 ]

진영훈 목사
2018년 09월 21일(금) 16:58
진영훈목사(삼일교회)
15년 전 지금 섬기는 교회에 32세의 나이로 청빙을 받게 됐다. 이사를 하고 부임 후 첫 집회는 수요기도회였다. 모임이 시작되기 1시간 전 목양실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였다. 문을 열어보니 백발 노인이 들어오지도 않고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당황스러워 필자도 맨발로 나가 무릎을 꿇고 맞절을 했다. 어르신은 내 손을 꼭 잡고 "목사님, 우리교회 좋은 교회입니다. 오래 오래 계십시오" 하셨다. 그분은 은퇴한 최종대 장로님으로 당시 76세였다.

그해 겨울 첫 눈이 왔을 때 새벽예배에 가려고 사택을 나서는데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사택에서부터 예배당까지 눈 쌓인 길을 누군가 쓸어둔 것이 아닌가! 새벽 4시였고, 누군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 다음 눈이 내리는 날을 기다렸는데 새벽 3시 30분부터 눈을 쓰는 한사람을 발견했다. 어둠속에서 털실모자를 쓰고 눈을 쓸던 분은 나에게 큰절을 했던 그 어르신이었다. 가슴이 여밀만큼 감동이 밀려왔다. 그 후에도 장로님은 감기에 걸려있는 목사를 위해 자전거로 눈길을 달려 용하다는 의원에서 감기약을 사오시기도 하셨다. 지금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지만 어르신의 아름다운 믿음과 섬김은 고스란히 교인들의 마음 속에 행복한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끔 필자에게 "이제 그 어른이 안 계시니 새벽에 눈이 오면 어떻게 하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지금도 필자는 눈길을 걷지 않고 깨끗하게 쓸어진 길을 걷고 있다. 이제는 시무장로님들이 눈길을 쓸어주고 계신다. 필자에게 교회 가는 길은 눈길이 아니라 언제나 꽃길이다.

우리 교회의 역대 교역자 중 총회장을 지내신 고 안경운 목사님껜 항상 가방을 직접 들고 수족처럼 수행하신 고 이내문 장로님이 계셨다고 한다. 이 장로님은 목사님의 털신을 가슴에 품어 항상 따뜻한 신발을 신도록 섬기신 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교회는 개혁도 중요하지만 전통도 중요하다. 그리고 전통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본을 보이고 희생해 길을 만들 때 그 길을 따라 걷는 이들이 생기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말없이 섬김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섬김은 어른으로부터 시작될 때 가치가 더해진다. 목사와 장로는 어른이다. 섬김으로 본을 보여야 하는 사람들이다. 서서평 선교사의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란 말을 떠올려 본다.

진영훈 목사 / 삼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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