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머니

세리머니

[ 이슈앤이슈 ]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18년 09월 04일(화) 10:53
세리머니



냉전 상태에서 놓여 있던 남북관계를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자카르타-팔렘방에서 열린 아시안게임도 막을 내렸다. 대형 국제 스포츠 행사를 통해 선수들은 물론 이를 지켜 보는 국민들도 웃고 우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특히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수년 동안 땀을 흘려온 선수들의 경기 결과에 관계 없이 감동이 아닐 수 없다.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은 승리의 감동을 뒷바라지에 힘써온 부모에게 돌이고, 응원해 준 국민들과 함께 땀을 흘렸던 감독과 코치, 그리고 동료 선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무엇보다도 벅차 오르는 승리를 자축하는 세리머니(ceremony)는 이를 지켜 보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뜨겁게 한다.

세리머니는 종교적 혹은 사회적인 의식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러한 의식을 위해서는 바른 몸가짐과 예의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운동선수들의 세리머니는 승리의 감동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의 개성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때로는 정치적, 사회적 내용을 세리머니에 담아 표현함으로써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 열린 동계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는 특별히 남북한 단임팀으로 구성된 종목도 있었다. 좋은 성적을 내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남북 단임팀이라는 것 만으로 선수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감동의 세리머니였다.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했던 남북한 단일팀 선수들은 함께 부둥켜 안고 때로는 축하하고, 때로는 격려했으며,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을 눈물의 세리머니로 표현됐다.

선수들은 개성을 살려 각각의 세리머니를 연출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세리머니가 나오기도 한다. 특히 요즘 젊은 선수들의 세리머니를 보면 과거와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다. 그들만의 톡톡튀는 아이디어가 있다. 과거에는 승리를 하든 아깝게 경기에 패하더라도 눈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선수들은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경기를 즐기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무엇 보다 달라진 것은 승자의 기쁨만이 아니라 패자에 대한 배려가 있다. 승자의 기쁨을 만끽하기 전에 함께 뛰었던 패배한 선수의 어깨를 토닥토닥 다독여 주는 모습이 더욱더 아름답다.

기독인 선수들의 세리머니는 대부분 기도하는 장면이다. 승리를 하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하는 모습이 영상를 통계 전해진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인들은 덩달아 함께 기도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선수들의 세리머니와 최근 한국교회의 모습이 오버랩 시켜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요즘 유행어로 '핵노답'이다.

총회 재판결과를 지켜 보던 관계자들의 모습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교회 재판은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결과에 따라 승리한자가 있고 패자가 있다. 승리한쪽은 그에 따른 세리머니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기독인 선수의 기도 세리머니가 재판장에서는 안보인다.환호와 함성(?) 뿐이다.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세리머니는 없다.

세리머니는 승리한 당사자에게는 기쁨이요 감사의 표현이다. 또 이를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응원이요 함께 기뻐하는 공감이다. 때로는 패한 자에게는 분노이고, 좌절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비전을 향한 도전이 될 수도 있음을 세리머니에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박만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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