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교회 옮기려고 이력서 냅니다"

"저 교회 옮기려고 이력서 냅니다"

[ 목양칼럼 ]

진영훈 목사
2018년 09월 07일(금) 09:37
진영훈목사(삼일교회)
선배 목사 한 분이 다른 지역 교회에 청빙서류를 제출했다. 당시 섬기던 교회 교인들이 알게 되는 것이 부담스러워 조용히 진행했지만 비밀은 지켜지지 않았고,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던 그 분은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됐다.

전에 다른 교회 설교를 맡게 돼 말쑥하게 차려입고 교회를 나서는 필자에게 한 권사님이 "어디 면접 보러가세요?"하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깨달았다 '교인들은 목회자가 조용히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필자는 그 다음 주일 예배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 동안 이 교회가 제 생계를 책임져 주시고 자녀 교육까지 감당해 주셨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교회를 옮기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먼저 교인들께 광고한 후 이력서를 내겠습니다." 교인들은 큰 소리로 "아멘" 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필자에게 정말로 다른 교회에 이력서를 제출할 일이 생겼다. 지인들의 강한 권유로 이력서를 제출하기로 마음먹고 한 주 전에 예배 광고시간에 이 일을 알렸다. "제가 이번에 ㅇㅇ교회에 이력서를 제출하려고 합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나는 약속을 지켰다. 숨기고 진행했으면 모두의 마음이 편했을지 모르지만, 이력서를 제출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나 죄를 짓는 일이 아니니 당연히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배 후 장로님들께 "제가 청빙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하고 물었다. 장로님 중 한분이 "그러면 우리교회는 더 좋지요"라고 말해 주셔서 격려가 됐고, 결국 이력서를 제출한 교회로부터 청빙도 받지 못했지만 이력서 제출 광고에 대한 교인들의 다양한 반응이 들려왔다. "목사님 우리가 힘들게 했나요?", "목사님 힘내세요 더 좋은 길로 하나님이 인도하실 겁니다", "광고를 들을 땐 서운했지만 그래도 목사답게 행동하시려는 모습이 은혜가 됐습니다". 이처럼 주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물론 부정적 입장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견은 거의 전달되지 않았고, 오히려 목사를 위로하려고 염려하는 교인들의 관심이 배가돼 큰 힘을 얻었다.

오랜 시간 함께 신뢰하는 관계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생활하던 목회자가 다른 곳에 마음을 두는 것이 일종의 배신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사를 세우는 일이 어디 사람의 일인가! 그것이 하나님의 일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 교회 공동체가 아닌가! 왜 목회자들은 다른 교회에 이력서를 제출하는 일을 쉬쉬해야만 하는 것 일까! 당당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인가! 가끔 청빙 광고에 '비밀을 보장해 드립니다'라고 표기하는 교회도 있는데 이것 또한 당당하지 못함 아닌가! 교회도 목사도 더 정직하고 당당해져야 하지 않을까.

진영훈 목사 / 삼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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