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 21개월은 군선교의 시작

군복무 21개월은 군선교의 시작

[ 주필칼럼 ]

변창배 목사
2018년 08월 03일(금) 16:02
한국군목회는 2016년 10월 27일에 군목제도 창설 65주년을 기념하는 한국군목선교대회를 개최했다. 선교대회에는 초대 한국군종목사단장을 지낸 김기태 목사를 비롯한 예비역과 현역 군종목사 30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군목회는 초교파 예비역 군목 1800여 명의 모임이다. 군목제도 창설을 제도화된 군선교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군목제도는 6.25전쟁 당시에 시작되었다. 미군 33사단 10공병대대에 근무하던 무명의 카투사 병사가 대통령에게 제출한 진정서가 계기가 되었다. 전투에 임하는 한국군 장병을 성직자가 복음으로 위로해 달라고 탄원했다. 대통령이 1950년 12월 21일에 군목제도 신설을 지시하면서 육군 인사국 내에 군승과를 신설하고, 1951년 2월 28일에 32명의 목사와 신부가 종군했다. 무보수 촉탁이었으나 1952년 6월부터 유급화되면서 해군과 공군에도 정착했다.

6.25전쟁 이전에도 군목은 있었다.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은 손정도 목사의 아들이었다. 손 제독은 1948년 9월 15일 정달빈 목사를 해군 중위로 입대시켜서 정훈감실 교화과장으로 임명했다. 정달빈 목사는 1949년 2월 5일에 용산 국방부 관사 33호에서 한국군 최초로 군인교회를 창설했다. 정 목사가 사실상 한국군의 첫 군목이었다. 해군은 1950년 12월 6일에 '해본작편 제33호'로 군목실을 창설하고, 추인봉 대위가 초대 해군본부 군목실장으로 취임했다. 군목제도와 군선교의 길을 연 예비조치였다.

2016년까지 모두 2530명이 군목으로 헌신했고, 1004개에 달하는 군교회가 생겼다. 1970년에 전군 신자화 운동이 시작되었다. 1군 사령관 한신 장군은 장병의 정신전력 증진을 위하여 군종참모 한준섭 목사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병사들이 기독교, 천주교, 불교 가운데 하나를 택해서 의무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했다. 전군 신자화 운동 이후 보호사병과 각종 사고가 감소해서 군내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 결과 1970년에 7만 8176명이었던 육군 기독장병이 1973년에는 19만 9623명으로 증가했다.

군선교를 조직화하기 위해서 한경직 목사가 중심이 되어 1972년 5월 29일에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를 발족했다. 군선교연합회는 초교파 기관이며 국방부가 지정한 군선교 관리센터이다. 현재 16개의 국내지회와 10개 국외지회와 함께 장병전도와 진중세례식, 예배당건축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70년대에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진중 합동세례식이 시작되었다. 71년에 최전방 육군대대에서 154명의 병사와 지휘관이 첫 합동세례를 받았다. 그해 11월에 1460명이 세례를 받고, 72년에 20사단에서 한경직 목사의 집례로 3478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2012년 5월 19일에 진중세례 40주년을 기념해서 논산훈련소에서 9519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 세례식은 최대의 수세인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군선교연합회는 1992년부터 2015년 3월까지 군세례자를 387만 2154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현재 기독교신자는 군인의 55%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육·해·공군·해병대의 군종목사는 260여명이다. 그 중에 우리 교단 소속이 60명이다. 2015년 이후 해마다 1명씩 우리 교단이 배출한 여성 군종목사는 육군(2명)과 공군(1명)에서 사역하고 있다. 민간 성직자인 군선교교역자는 군종목사 파송 10개 교단에서 모두 650여명을 파송했다. 그 중 우리 교단 소속이 100여 명이다.

군복무 21개월은 군선교의 시작이다. 군선교의 결실은 지역교회로 이어져야 한다. 군선교를 통해서 해마다 17만여 명이 세례를 받는다. 구령사업의 황금어장이다. 이들은 청년세대 최대의 새신자이며, 한국교회의 희망이다. 군선교가 교세감소시대의 한국교회를 위한 토대가 되도록 군선교와 민간교회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그 길이 군종사관후보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연무대교회 건축을 위해서 마음을 모으는 노회와 교회에게 보람을 주는 길이다.



변창배 목사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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