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 거미줄과 당신1

조나단 에드워즈, 거미줄과 당신1

[ 특별기고 ] Paul Louis Metzger 교수(Ph.D OMSC 초빙교수)
번역 : 문전섭 목사(전 대전신학교 학장)

Paul Louis Metzger 교수
2018년 07월 31일(화) 10:13
조나단 에드워즈, 거미줄과 당신 1



Paul Louis Metzger 교수(Ph.D, OMSC 초빙교수)

번역 : 문전섭 목사(전 대전신학교 학장)



해외사역연구원(OMSC)의 주최로 필자인 Paul Louis Metzger 교수와 함께 미국의 요나단 에드워즈 유적지 그룹투어에 참여하고, Paul교수가 쓴 영문 원고이다. 이 투어에 함께 참여했던 문전섭 목사의 번역으로 3회에 걸쳐 게재한다.



대부분의 글들에서, 요나단 에드워즈는 미국의 가장 위대한 지성인들에게 영적인 영향을 미친 한 분으로 소개되고 있다. 미국의 역사는 "에드워즈의 종교적인 역사 없이는 고래 없는 Moby Dick(고래잡이를 중심한 Herman Merlville의 작품 제목-역자 주)과 같이 이야기하였다"는 신학자 George Marsden의 주장을 상기하게 된다.

필자는 지난 봄부터 커넥티컷 주에 위치한 에드워즈의 땅들의 한 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에드워즈는 예일대학교를 졸업하였고 또한 이곳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기도 하였다. 예일은 그를 기념하여 한 중앙에 기념비를 마련하고 있으며 또한 예일대학교의 한 대학은 그의 이름을 명명하기도 했다. 나는 애드워즈를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였던 한 저서 프로젝트를 작업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OMSC에서 요나단 에드워즈 여행을 제공하고 있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기쁨으로 참여하게 됐다. 에드워즈 여행이 내게 끼쳤던 주요한 인상들을 이 첫 번의 글을 시작으로 해서 3회에 걸쳐 정리하려고 한다.

에드워즈는 항상 신비스럽고 또한 극히 복잡한 인물로 알려져 왔다. 가끔 잘 못된 해석으로 신비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필자가 젊은 시절 유일하게 읽은 에드워즈 작품은 '성난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죄인들(Sinners in the hands of an angry God)'이였다. 우리가 이 설교에 대해 무엇을 만드는가에 상관없이, 그리고 그 초상이 얼마나 강력하든지간에, 그것은 결코 에드워즈의 전체적인 글들의 그 풍부한 다양성을 요약하고 있다.

안내자에 따르면, 에드워즈는 아이였을 때부터 조숙한 마음에서 그의 전 생을 통하여 남겨지곤 했던 특성들을 발견 할 수 있었고, 또한 단순히 거미들에 대한 매력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편지에 그것들 자체로 명백한 두 가지의 특징을 들 수 있는데, 첫째 에드워즈는 자연 과학자에 대한 예리한 관찰적, 분석적인 기술을 가졌으며, 둘째 에드워즈는 동시에 한 형이상학자로서의 절정적인 도달의 본을 보였다. 전자의 분야에 재능이 주어진 반면, 에드워즈의 열정은 후자의 소명에로 향하여졌던 것이다. 요나단 에드워즈의 'Reader'라는 저서의 편집자들이 주목하여 말했던 대로, "자연적, 물질적 세계에 대한 젊은 에드워즈의 탐색들은, 처음부터, 단지 어떤 더 크고, 불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이입 지점들(entry points)이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에드워즈의 형이상학적 및 신학적인 충동은 문제가 있고 또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한 편(중세기로 되돌아가는 것), 필자는 자연적 및 초자연적 영역들 간의 연결들의 탐색에 대한 그의 매력에 흥미가 있다고 본다. 미학에 대한 글의 관심과 그리고 균형 및 조화에 대한 탐색은 에드워즈의 관심들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분명한 것은 그의 궁극적인 관심인 "'모든 것의 최상의 조화'인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증거 하였던 것이다.

확실히 객관적인 탐구들을 불신하는 형이상학적인 참투들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명백한 일로서의 자연적 영역에 대한 엄격한 숙고에 대한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훼손함이 없이 자연적, 도덕적 영역들을 연결하며 또한 유리 아래 잡혀 있는 곤충처럼 분석될 수 없는 우리가 왜 존재하는가에 관련된 실존적인 질문들을 추구할 자연적 및 도덕적 영역들을 연결하는 줄들을 탐색할 필요가 또한 있는 것이다.

에드워즈의 추구는 어떤 이들에게는 오도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최소한 그가 오늘날 우리에게 대해 갖는 한 가지 이점은 그의 세계는 갈라져있지 않으며 전체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복잡하고 현란한 거미줄처럼 말이다. 여러분은 자연적 도덕적, 그리고 실존적인 영역들 간에 어떤 종류의 줄을 구축할 것인가, 또한 여러분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을 어떻게 미학적으로 기뻐할 것인가?

{Paul Louis Metzger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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