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장애를 가진 목사

결정 장애를 가진 목사

[ 목양칼럼 ]

김동환 목사
2018년 07월 27일(금) 10:00
어느날 한 교인이 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거두절미하고 "목사님! 왜 우유부단하십니까?"라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어느 편에든 서야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어떻게 합니까? 분명히 말하세요. 어느 쪽입니까?"라며 결단을 강요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 이쪽인가 저쪽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은데 그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니 참으로 난감하다. 이쪽을 택하자니 저쪽이 문제고, 저쪽을 택하자니 이쪽이 문제가 된다. 필자는 지금도 둘 다 옳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목회자가 분명하기를 원한다. 심지어 "목회자이기 때문에 입장이 더욱 분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목회는 분명하게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선배들에게 배운 것 중에 하나가 '복음과 진리 외에는 목숨을 걸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편을 가르려고 하지만, 목회는 편을 가를 수 없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유부단한 목사가 돼버렸다.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마도 필자는 결정 장애자로 보일 것이다.

섬기는 교회가 지난해 건축을 진행했다. 대지 1만 5000㎡ 위에 건평 4300㎡(1300평)의 건물을 9개월 만에 완공했다. 건축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드냐?"고 물었다. 한사코 "힘들지 않고 평소처럼 잘 지내고 있다"고 답했지만 대부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데 정말로 아주 편하고 수월하게 교회건축이 끝났다. 왜냐하면 필자는 건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담임목사가 교회 건축에 전혀 관여를 안한다는게 말이나 되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필자는 결정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건축은 수시로 선택과 결정을 요구했다. 설계도가 있어도 건축 과정에서 변경이 생겼고, 자재를 바꿔야 하는 일도 생겼다. 만약 그때마다 필자에게 결정권이 주어졌다면 건축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처음부터 관여하지 않은 것이 참 잘 한 일이 됐다. 담임목사가 관여하지 않고 전권을 위임해 준 것이 건축위원들에게도 큰 힘이 됐던 것 같다.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예상보다 2~3개월 앞서 준공검사까지 받게 됐다.

필자는 우유부단하고, 결정 장애를 가진 목사다.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해도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못난이다. 그래서 오늘도 교인들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도 편들어 주지 못한다. 때론 양쪽 모두의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 쪽 편에 서는게 더 힘들다. 어떤 땐 한 쪽의 잘못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 쪽만 두둔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실수와 잘못도 품고 가야하는 것이 목회이기 때문이다. 공의도 중요하지만 목회자는 관용, 용서, 인내를 실천해야 한다. 결국 결정 장애자로 살게 됐지만, 모두를 품고 갈 수 있기에 행복할 따름이다.

김동환 목사 / 진천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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