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분노의 현실

'미투' 분노의 현실

[ 논단 ]

정현미 교수
2018년 04월 18일(수) 12:04

'미투 운동'은 지난해 말 할리우드의 한 거물영화 제작자에 대한 성폭력 전력이 폭로되면서 촉발됐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지난 연초 한 여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에 이어 연예ㆍ문화계와 정치권, 교육계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알게 모르게 만연돼 있어 이미 다수의 여성들이 일상에서 경험한 일들이었다. 그러나 성차별이나 성폭력으로 인해 누적된 피해자의 고통과 분노가 사회에 고발되면서 강한 폭발성을 불러일으켰고, 이제 의식의 변화까지 촉구하게 됐다.

미투 운동은 가해자의 잘못된 행동을 고발하고 사회적 연대를 구성해 진실을 규명하자는 노력이다. 그런데 길게는 수십년 전부터 짧게는 몇 년 전의 일들이 수면에 떠오르면서, "왜 오래 전 일을 이제야 말하나?",  "한 번이라면 이해가 되는데 왜 여러 번 응했는가?", "이제 와서 공중에 폭로하는 것은 시류에 편승한 악의적인 의도가 아닌가?" 등 많은 말이 오가고 있다.

필자는 이 질문들에 대해 기초적이지만 일부 남성들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는 몇가지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왜 이제 말하나?'; 성폭력이나 성희롱은 과거부터 많은 개인 피해자들에 의해 문제 제기가 됐지만, 오히려 피해자에게 다른 의도가 있는게 아닌지 의심받았고 때로는 의도적인 행위로 몰아가는 주변인의 따가운 시선과도 맞서야 하는 이중고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사법기관과 법제도에 대한 불신도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를 억압하는 요인이 됐다. 지금까지도 사법부나 대부분의 형법학자들은 성폭력 범죄를 매우 좁은 범위에서만 인정하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성폭력 범죄가 유발하는 인격적 침해의 심각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법제도적으로도 지난 2013년 6월 친고죄가 폐지되기 전까지는 가해자 처벌이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중의 피해를 당하는 허다한 현실을 목도한 피해자들로서는 자신의 아픔을 사회에 드러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왜 여러 번인가?'; 성폭력은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 그 경우는 대체로 조직 문화나 권력 관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발생된다. 직책이 높다는 것만으로도 위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상급자는 잘 의식하지 못한다. 몇 차례의 폭력이 일어났다면 실제로 아랫 사람은 훨씬 많은 위력과 위기상황을 겪었을 수도 있다. 

때로는 아랫 사람이 반대의사를 표시해도 그 생각이 윗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윗 사람은 항상 스스로의 착각을 경계하고 윤리적으로 더 엄격한 잣대에 따라 처신해야 한다. 

'굳이 공중에 폭로하는가?'; 그 동안 성폭력이 법제도적으로 잘 해결되지 못하면서 축적된 분노는 미투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거기에 최근 급속도로 확대된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라는 즉각적이고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온라인 수단이 더해진 것이다. 젠더화된 폭력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구조의 문제이므로 공론화를 통해 바로잡아갈 필요가 있다. 미투는 좀 더 나은 사회구조로 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현미 교수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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