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 3각 교회

2인 3각 교회

[ 목양칼럼 ]

우태욱 목사
2018년 04월 10일(화) 17:17

필자의 교회는 요즈음 새벽기도회에서 고린도전서를 강해해 가고 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고린도교회는 초대 교회 당시 제법 큰 교회였다. 그러나 교회가 큰 만큼 오늘날과 같이 문제도 많이 있어났던 교회이다.

교회 안에 언변이 좋아 설교를 잘하기로 소문난 아볼로를 따르는 아볼로파가 생기는가 하면 그래도 고린도교회를 세우신 분이 바울인데 바울을 좇아야하지 않겠느냐는 바울파가 생기고, 바울이나 아볼로는 예수님의 뒤를 한 번도 직접 따른 적이 없는데 예수님을 직접 따라 섬겼던 수제자 베드로를 좇아야한다는 게바파가 생겨났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바울도 아볼로도 게바도 다 사람인데 어떻게 우리들이 사람을 좇을 수가 있는가? 그래도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좇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파도 생기게 된다.

이렇게 고린도 교회는 파당을 만들어 놓고 서로 시기하고 헐뜯으며 다툼과 분쟁을 계속 했다. 사실 고린도교회는 성령의 다양한 은사의 축복을 받은 교회였다. 최근에 고린도전서 14장을 강해하고 있는데 고린도전서 12장에서 14장까지는 바로 그런 은사에 대한 말씀이다. 정말 남부러울 것 없을 만큼 다양한 은사를 성령을 통해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셨는데 저들은 은사를 가지고도 다툼과 분쟁을 일삼는다. '과연 어떤 은사가 더 좋은 은사인가?', '어떤 은사가 더 큰 은사인가?' 자신들이 받은 은사를 서로 자랑하고 내세워가며 은사 논쟁도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세상 법정 소송에 대한 문제, 우상 앞에 드려진 제물 문제, 음행에 대한 문제 등등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고린도서에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러니 바울 사도가 바라보기에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도대체 왜 고린도교회는 그토록 다툼이 넘쳐났을까? 바울은 그 이유를 바로 사랑으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충성도 헌신도 사랑을 담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 유익, 자기 욕심에 치우쳐 가장 중요한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이 어디 고린도교회만이겠는가? 역사 속의 모든 교회들도, 또 오늘의 교회들도 바로 이 사랑으로 행하는 헌신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가 잘 아는 운동회 경기 중에 2인 3각이라는 경기가 있다. 두 사람이 한쪽 발을 서로 묶은 채 반환점을 돌아오는 경기이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막상 달려가다 보면 여기저기서 넘어지기 일쑤이다. 마음은 급한데 마음대로 앞으로 달려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왜 그럴까? 서로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그러하다. 빨리 달려서 1등을 하겠다는 의욕만 앞선 채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고 욕심대로 달려가기에 결국 몸의 균형이 무너져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2인 3각 경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을 잘 따라야 한다.

첫째, 서로 어깨동무를 해야 한다. 둘째, 서로의 몸을 가능한 한 바짝 밀착해야 한다. 셋째, 한 사람의 목소리에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외치며 서로 발을 맞추어 달려가야 한다. 그러면 한 사람이 달리는 것처럼 뛰어갈 수 있고 결국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하나님의 교회가 또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목사가 있다 할지라도 장로님들이 어깨동무를 해 주지 않으면 바로설 수 없다. 제아무리 좋은 당회가 있어도 성도들이 마음의 밀착을 해주지 않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다. 또 영적 지도자인 목회자의 목소리에 맞추어 하나 둘! 하나 둘! 헌신의 발을 맞추지 않으면 절대로 승리하는 교회가 될 수 없다.

오늘도 핸드폰을 켜니 SNS를 통해 한국교회들의 목사, 장로, 성도들의 다툼 분쟁이야기들이 잔뜩 올라와 있다. 왜 이렇게 오늘날도 현대판 고린도교회들이 넘쳐나고 있을까? 역시 이유는 한가지이다. 사랑으로 행하는 헌신이 없는 것이다. 노회나 총회가 일 년 내내 재판에 매어 쩔쩔매는 모습은 우리 모두를 참으로 안타깝게 하고 있다. 마음을 담은 사랑의 섬김과 헌신이 한없이 아쉽고 그리운 현실이다.

한 교회에서 목양 30년, 긴 세월 목양의 길을 걸어 왔다. 혹자들은 한 교회 30년 참고 인내한 목회자들에게는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해 드려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 말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30년의 세월동안 목사를 참아주고 견디어준 성도들이 있음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돌아보면 허물도 실수도 많았고 부족하고 모자람도 많은 목사인데 그래도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 불러주고 섬겨준 성도들, 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감사가 된다. 물론 앞으로 남은 목회도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목사도 성도들도 참된 사랑으로 하는 헌신이 답이라는 것이다. 바울 사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필자의 교회뿐 아니라, 오늘의 교회들이 서로서로 어깨동무하고 몸과 마음을 밀착하고 발맞추어 앞으로 나아가는 2인 3각의 경주, 승리하는 교회들이 되길 바란다. 

우태욱 목사 고읍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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