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 하시는 선교

성령께서 하시는 선교

[ NGO칼럼 ]

홍상태 목사
2018년 03월 27일(화) 16:17

필자가 일하는 사단법인 참된평화를만드는사람들은 희망 2세(탈북여성들이 낳은 자녀들을 지칭)를 돌보는 돌봄센터를 중국 연변자치주 훈춘시에 6년 전에 설립하고 그 운영을 후원해왔다. 그냥 두었으면 길거리에서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를 아이들이 여기서 사랑으로 자라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온 아이들이 작년에 대학에 들어가는 기쁨과 보람을 맛보게 되었다.

이러한 돌봄센터가 연변에서는 흔하지 않아서 매스컴에 오르내리기도 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훈춘시에서는 올해부터 보다 큰 규모의 시설을 건립하고 돌봄센터와 비슷한 민간운영 센터의 어린이들을 중국정부가 돌보겠다고 한다. 그래서 돌봄센터인 어린이집은 문을 닫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돌봄의 대상을 찾아야 할 때이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생각도 들지만 정부가 이 일을 맡아서 하면 우리가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도움을 받게 되리라는 생각에 위로해 본다. 적어도 6년 전에는 훈춘시는 희망2세들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어린이집이 생기면서 세인의 관심과 더불어 희망 2세가 어려운 환경에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제 그 일을 정부의 일로 맡아서 하게 되었다.

하나님를서 교회를 통해 하시는 일은 이와같은 형태로 진행되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아픔이 있는 그 곳을 교회가 가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듬고 사회나 국가가 그 일을 알게 되어 맡아서 하게 되면 우리는 다시 다른 어둡고 아픈 곳을 찾아가서 세상에 드러내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선교라는 생각이 든다.

1970년대 노동자들이 아프고 힘들 때, 사회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 한국 교회가 문을 열고 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이후 사회에서 노동자들을 돕는 일이 활발해지고 전문적인 노동센터들이 생기기 시작할 때 교회는 그 일을 사회와 국가에게 넘기고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섰다.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다문화 가정의 어려움에 주목하는 사람이 없을 때 교회는 그 아픔에 함께 하였고 이제 그 아픔을 사회와 국가가 함께 떠맡기 시작했다. 또 교회는 세상이 보지 못하는 아픔이 있는 곳으로 가야할 것이다. 

예수께서 선교를 시작하실 때 읽은 말씀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이다.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를 자유케하는 선교를 말씀하신다.

아픔이 있는 곳은 시대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세상의 관심이 없는 곳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이 창기, 세리 등에게 관심이 없을 때 그들에게 가셔서 함께하셨다. 오늘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대상은 달라져도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아픔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행동 이전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라고 하여 실천이전에 내 삶이 달라지는 내면의 변화를 말씀하신다.

성령이 임하면 세상이 보지 못하는 아픔이 보이고 그 곳에 가서 함께하면서 주의 은혜를 전하고 싶게 된다. 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돕는 곳이 교회가 아니라 교회라서 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돕는 것이다. 그 곳의 아픔이 보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임하셔서 삶의 가치가 달라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아픔이 보이는 곳에 자발적으로 달려가게 되어있다.

세상은 그것을 선행이라고 부른다. 선행을 해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선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어린이집이 하던 일은 세상이 관심을 가지고 돌보기 시작했으므로 성령께서 아픔이 보이는 새로운 곳을 보여주시리라고 믿는다. 그 곳에 예수님의 마음으로 또 그렇게 가려고 한다.

홍상태 사무총장
참된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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