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원에서의 노동

예수원에서의 노동

[ 4인4색칼럼 ]

​정인철 장로
2018년 03월 21일(수) 15:17

몇 해 전 강원도 태백에 있는 예수원을 2박3일 동안 방문한 적이 있다. 바쁜 일상을 사는 나에게는,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우선시하고 침묵을 수행하는 수도자의 삶이 때때로 도전이며 열망이었다. 

깊은 산골에 있는 예수원으로 가는 길 내내 자작나무가 쭉 펼쳐져 있었는데, 그날따라 마치 나를 환영이라도 하듯 비까지 촉촉하게 내렸다. 아름다운 그림같았던 그 풍경은 가는 길마저 찬양과 묵상의 시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예수원은 노동과 기도를 기본으로 하는 공동체의 삶을 사는 곳이다. 노동이 곧 기도요, 기도가 곧 노동이다. 방문자들은 하루 세번 기도하는 것과 예배에는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지만, 노동 시간에는 어떤 일을 하든지 개인의 자유이며 원할 경우 쉴 수도 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 논밭의 일들이 제법 익숙한 필자는 노동 시간에 풀을 뽑는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날 밤과 아침 시간의 예배에서 피아노 소리를 들어보니 '수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담당자에게 스스로를 조율사라고 소개를 한 후 피아노를 점검하고 조율하게 됐다. 

조율은 필자가 언제나 하는 익숙한 일이지만 그날 예배실에서는 또 다른 기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조율을 마치고 공구들을 정리하는데 관리인이 "다른 곳에 있는 피아노도 조율해 주실 수 있을까요?"하며 물어왔다. 

그 제안을 기쁜 마음으로 수락한 후 예수원을 섬기며 생활하는 한 가정과 삼수령목장을 관리하는 가정을 방문했다. 그 두 곳의 피아노들은 오랫 동안 기본적인 수리조차 받지 못해서, 조율하는 데 평소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렸지만 조금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상으로 돌아와 종종 그날의 기억을 떠올릴때 '어느 곳에서나 나의 노동은 기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기도처는 나와 먼 곳에 있지 않다. 지금 주변이 고요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나는 지금도 삶의 현장에서 또한 조용한 곳을 찾아 하루 하루 침묵의 기도를 드리며 살아가고 있다. 

정인철 장로
순천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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