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정신

장인정신

[ NGO칼럼 ]

배성훈 목사
2018년 01월 31일(수) 10:37

일본의 수도인 도쿄(東京), 그 중에서도 가장 번화하다는 긴자(銀座)에는 100년, 200년 된 가게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원조라고 하는 가게들이 많다. 단팥빵 원조, 돈가스 원조, 화과자 원조 등등. 이런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가게들 사이에서도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가게가 하나 있다.

70여 년 정도의 역사를 자랑하는 '카페 드 람브레'(Cafe de L'ambre)라는 이름의 로스터리(roastery) 카페가 그곳이다. 번화가인 긴자에 있지만, 번화가에서 한 블록 벗어난 이면 도로 가운데 작게 위치하고 있어서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이 카페를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카페이다.

가게의 입구에는 '오운 로스트 핸드 드립'(Own Roast Hand-Drip)이라고 영어로 크게 붙여놓았는데, 그 말 그대로 이 카페의 모든 커피는 자신들이 원두를 고르고 직접 로스팅한 것만 쓰며, 손님들이 받는 커피는 일일이 실크로 만든 융 드리퍼(dripper)에 손으로 직접 내리는 것만 내어 준다.

카페 오레(Cafe au Lait, 카페 라떼보다는 좀 진한 프랑스식의 커피)를 시키면, 거기에 들어갈 우유를 오래된 법랑 주전자로 끓여서 거품을 내어 부어주고, 심지어 아이스 커피에는 전날 미리 핸드 드립한 커피로 얼린 커피 얼음을 송곳으로 카빙(carving)하여 내어 준다. 비장하기까지 한 이런 진지함과 거기에 바탕을 둔 장인정신(匠人情神)이 이곳을 사람들이 즐겨찾는 카페로 만든 이유일 것이다.

사회복지기관은 일상이 정해져있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고, 업무보고에 적힌 일들을 진행한다. 이렇게 1~2년을 겪어보면, 계절에 따라 어떤 업무를 해야 하는지 예상이 가능하다. 비슷한 일상과 예상 가능한 업무는 권태의 온상이다. 그러나 권태는 자신의 일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특히 사람을 매일 만나는 사람, 사람을 섬기는 사람,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은 진지해야 한다. 진지하지 못하면, 장인(匠人)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법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나 사람을 대할 때 반짝 하는 영감(insight)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직원들이 있다. 그 직원들에게는 꼭 카페 드 람브레 이야기를 해주며, 카페 한 켠에 붙어있던 브람스(Johannes Brahms)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Without Craftmanship, Inspiration is a mere reed shaken in the wind."(장인정신이 없으면, 영감은 바람에 흔들리는 한낱 갈대와 같다.)

가장 영감이 중요한 음악가가 오히려 진지한 장인정신을 이야기한다. 사실 번쩍하며 떠오르는 영감 역시도 매일 매일의 진지한 일상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사회복지기관의 일이 다 비슷하다고, 고만고만한 일들이라고, 그래서 누가 하나 다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커피 믹스와 핸드 드립한 커피를 함께 대접하며 물어보고 싶다. "커피 맛이 다 같으세요?"

배성훈 목사
주안복지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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