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함께 하는 교회

민족과 함께 하는 교회

[ 목양칼럼 ]

윤마태 목사
2018년 01월 24일(수) 15:09

2019년은 삼일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삼일운동이란 1919년 3월 1일 서울의 파고다공원과 태화관, 전국의 9개 지역에서 '독립선언서'를 선포하면서 시작되어 적극적으로는 약 2개월, 광의적으로는 1년여 간에 걸쳐 전국적으로 그리고 해외의 만주, 연해주 등으로 확대된 민족적인 항일독립운동을 의미한다.

이 운동은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고 9년 후에 일어난 사건으로서 민족독립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소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적극적인 약 2개월 동안 200만이 넘는 한국인이 3.1운동에 가담하였다. 전국 232개 부,군 가운데 229개 부,군에서 1491건의 시위를 벌였다. 4월 말에 접어들면서 일제의 야만적인 탄압으로 반일 투쟁은 서서히 막을 내렸다. 3월 1일에서 5월말까지 학살된 사람이 7979명, 부상자가 1만 5961명, 검거된 사람이 4만 6948명에 달했다.

민족대표 33인중에, 천도교도 15명, 불교도는 2명에 불과했으나 기독교신자는 16명에 달했는데, 이 점은 당시 교회가 이 민족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음을 반영하고 있다. 기독교인사 16명은 직업별로는 목사 10명, 전도사 3명, 장로 2명, 집사 1명이었는데, 연령 면에서는 40대 목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10명의 목사들은 당시 한국의 목사 257명 중 4%에 해당한다.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목사 4인, 지역 지도자급 소장목사 6인, 청년지도자 4인, 그리고 민족운동가 출신의 지도자 2인으로 구성되었다. 삼일운동 당시 조선의 인구는 1714만 명이었다(통계청 자료). 기독교인은 22만 명 정도였다(기독교인 비율 1.2%). 국사편찬 위원회가 발행한 '일제침략 하 한국 36년사'를 보면 3.1독립운동에 참가한 인구를 종교별로 보면 기독교가 22%, 천도교가 15%, 기타종교가 2%, 무종교가 61%였다.

이 당시 기독교 인구가 전 국민의 1.2% 정도였는데, 삼일운동에 참가한 자 중 22%가 기독교신자였다는 점은 기독교가 삼일운동을 주도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많은 사연이 있는 대학 생활을 하였다. 1977년 유신헌법 체제하에서 시작한 대학시절은 1979년 10.26 사태로 격변을 겪었고, 1980년 격동의 한해를 보내면서 학교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함석헌 선생의 강연은 청년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함석헌 선생은 1934년 2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22회에 걸쳐 '성서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연재했다. 1950년 3월 28일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간행했다. 그는 '조선역사'를 통해 우리나라 역사에 깔려 있는 기조를 '고난의 역사'라고 봤다.

우리 역사에 있는 것은 치욕과 분열과 압박과 상실과 좌절의 역사였다고 보았다. 38선은 '하나님이 이 민족을 시험하려고 낸 시험문제'라고 해석했다. 해방을 시켜주되 그냥 주지 않고 나라 한복판에 금을 긋고 그것을 돌파해보라고 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만큼 학대받고 천대받았으면 자유와 통일의 귀중함을 깨닫고, 고난의 철학을 얻었어야 할 것인데 우리는 아직 시험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한국기독교는 민족의 고난의 현장에서 민족과 함께하는 고난 받는 교회였다. 2019년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한국교회는 지금부터 민족의 고난에 동참하는 교회로 거듭나서 다시 한 번 민족의 희망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 1920년대 일제가 만든 비밀 문건 속에 "이 민족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단체가 있다면 그것은 조선의 교회이다"라는 정보 분석 보고가 있었다. 지금 한국교회는 그런 사회적 존경과 신뢰를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이제 그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제부터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삶을 선택하자. 좀 더 불편하고, 좀 더 손해보고, 좀 더 낮아지고, 좀 더 희생하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을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실천하자. 그리하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신뢰의 출발이 아닐까?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고 자족하며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자. 지금 우리는 못 먹어서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이다.

아직도 지구상에는 10% 가량이 기아상태에 있다. 그것은 우리가 나누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섬김과 나눔을 실천할 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작은 일을 실천하는 것이 민족에 희망을 주는 시작이 될 것이다.

윤마태 목사 천안서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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