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니우스의 편지

플리니우스의 편지

[ 논단 ]

남택률 목사
2018년 01월 16일(화) 13:59

남택률 목사
광주유일교회

학창 시절 필자는 당시 유행하던 청바지, 통기타 문화에 빠져 지냈고, 살아가는 이유라는 실존적 질문에 짓눌릴 때 영화 '썸머타임 킬러'의 스피드를 흉내내며 오토바이를 몰았다. 교실 안에서는 의식주를 위해 점심 한 끼의 투자가치를 따지는 케인즈(Keynes)의 승수이론(乘數理論)을 배워야 했고, 교실 밖에서는 민주화 이데올로기의 격랑 속에 예속된 시대의 무게를 온 몸으로 느껴야 했다.

그러던 1980년 봄, 신학교의 문을 두드린 후 교정의 등나무 아래서 만난 친구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안병무의 '민중신학'과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이었다. 강의실에선 언제나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 충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신학은 획일화 된 군부 독재시절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했다. 우리들의 논쟁 안에선 부자와 기득권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었고,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위해 오셔야만 했다. 관점을 놓친 아고라의 광장처럼 그렇게 시끄러운 시간들이 속수무책으로 지나갔다. 논점은 분명했으나 갈등은 언제나 끝나지 않았다.

그 후로 강과 산이 변한다는 시간이 세 번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촛불과 태극기가 첨예하게 갈라져 있는 현실을 본다. 과연 해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시대의 명제를 끌어안고 예수님을 묵상해본다. 예수님은 극 진보주의자인 동시에 극 보수주의자였다. 

당시 세리나 창기와 함께할 정도로 진보주의자 중에 진보주의자였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가장 보수적인 길을 걸으셨다. 그는 죽음으로서 영원히 사는 밀알사상을 우리에게 심어 주셨다. 즉 복음의 본질과 복음의 결론은 섬김으로 귀착된다고 볼 수 있겠다. 

필자는 장흥에서 태어나서 자란 후, 중학생 때부터 광주에서 공부하며 꿈을 키웠다. 대학을 가기 위해 서울에서 공부했던 1년을 뺀 50여 년을 고스란히 광주에서 살았다. 광주는 참 따뜻하고 정이 많은 도시다. 누구든 광주에 대해 궁금해하면 거침없이 이렇게 말한다. "광주(光州)는 빛 '광' 고을 '주', 빛의 도시(light city)입니다." 또한 성경에서 빛은 예수님을 의미하는데, 그래서 광주는 예수님의 도시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광주 정신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광주는 정의의 도시다. 불의에 절대 무릎 꿇지 않는 의로운 도시다. 둘째, 정직한 도시다. 도시가 무정부 상태에 빠졌을 때 시중의 은행이나 동네의 상점 중 어느 한 곳에도 도둑이 들지 않았다. 셋째, 섬김과 나눔의 도시다. 5.18당시 어머니들이 거리마다 솥을 걸고 주먹밥을 만들어 배고픈 시민들을 내 식구처럼 먹였다. 주먹밥 정신은 곧 섬김과 나눔의 정신이고, 공동체를 실현한 복음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로마의 역사학자인 플리니우스(Plinius)가 황제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태를 보고하기 위해 쓴 편지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그들(그리스도인)은 결코 음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도둑질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약속을 어기지도 않습니다. 거짓말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채 문제에 대해서도 절대로 깨끗합니다. 그들은 정의롭습니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만 그랬던 것일까? 아니, 우리도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은 날마다 기적을 믿으며 사는 것이다. 기적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나 엄청난 돈을 벌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화평할 수 없고 거룩할 수 없는 우리가 화평의 사람이 되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기적이 일어난다. 복음으로 사는 교회의 모습이 그래야 한다. 2000년 전 이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면서 누군가 오늘날의 교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플리니우스의 편지처럼 보여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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