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자산

역사적 자산

[ 이슈앤이슈 ]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18년 01월 16일(화) 13:53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한 영화가 주목을 받고 있다. 1987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당시 국민들은 거리에 나와 호헌철폐를 주장하며 연일 시위를 이어갔다. 호헌은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는 국민들의 개헌 요구에 당시 대통령이 담화문을 통해 헌법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서 연일 거리에서는 '호헌철폐'와 함께 '독재타도' 등의 구호가 터져 나왔다. 때에 맞춰 1월에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더욱 분노했다. 이 때 나온 용어가 직장인을 뜻하는 '넥타이부대'다.

일반 국민들이 시위행열에 가담한 것이다. '6월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6월민주항쟁의 결과는 6월 29일에 노태우 후보가 직선제 수용 선언(일명 6.29선언)을 하면서 일단락 됐다. 6월 항쟁의 대미는 7월 9일 서울에서 열린 이한열의 장례식이었다. 1987년의 역사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최루탄에 맞어서 숨진 이한열이라는 두 대학생이 있었다.

영화 '1987'에 나오는 향린교회(영화속에서는 '향림교회'로 표현)는 기독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하는 근거지가 됐다. 이렇듯 1987년 역사에서 교회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계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중에 기독교인은 16명으로 50%를 차지했다. 당시 전체 인구 중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8%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나라를 위해 앞장섰던 기독교인의 역할이 엄청났음을 알 수 있다. 이 기독교인들 중 일부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며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기존의 역사위원회를 삼일운동백주년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특별위원회를 두고 3.1운동에 참여했던 장로교인들을 찾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위원회에 따르면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른 장로교인이 1440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장로교인들을 새롭게 재조명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동안 역사적인 사건이 확인되는 과정에서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심심치 않게 확인됐다. 이들은 명목상의 기독교인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신앙적 양심에 따라 민족을 위해 헌신했다.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충분히 역사의 주인공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했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전수조사를 시작한 1440명은 물론이고 일제식민지, 한국전쟁, 1970, 80년대의 민주화 과정에서 신앙의 양심에 따라 자신을 희생했던 기독교 인사들을 찾아 그 뜻을 기려야 한다는 과제가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러한 일은 교단을 나누어 생각할 일도 아니다. 더군다나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터부시 해서도 안된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함께 했던 기독교의 역사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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