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간만 손을 쓸 수 있다면...

7일간만 손을 쓸 수 있다면...

[ 기획 ] 뇌성마비 앓는 이은주 집사와 남편 문승찬 집사 부부 이야기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7년 12월 28일(목) 16:45
   
 

"손이라도 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하나님께서 내게 7일간 손을 쓸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다면 난 첫째날엔 매일 아침 남편에게 식사를 직접 차려주지 못해 내내 마음이 짠했는데 이 손으로 아침 밥상을 정성껏 차려 주고 싶다. 둘째날엔 늘 발가락에 수저를 끼워 밥을 먹곤 했었는데 이 손으로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밥을 떠서 먹고 싶다. 그리고 셋째날엔 이 손으로 성경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하늘 아버지께 두 손을 모아 묵상하고 싶고, 넷째날엔 주일날 교회에 나서기 전 남편에게 직접 옷을 골라주며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고 싶다. 다섯째날엔 세수대에 물을 받아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이 손으로 남편의 발을 시원하게 씻어주며 '종일 수고 했다'며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여섯째날엔 주방을 깔끔하게 정리하며 이 손으로 그릇을 하나 하나 만져가며 예쁘게 가꾸고 싶다. 마지막날엔 두 손 모아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7일간의 기적에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리고 싶다."

뇌성마비로 손과 발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이은주 집사(48세ㆍ주영교회)가 최근 지인들에게 SNS로 보낸 짧은 소망의 글이다. 뇌성마비로 몸을 가누기도 힘든 이 집사는 지난해 5월5일 두살 연하의 남편 문승찬 집사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47세의 노처녀에 몸까지 불편한 장애인이 인물 좋은, 게다가 두살 연하의 비장애인 남편과 결혼을 하자 많은 이들이 이들의 스토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자 또한, 이들의 사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허락을 구하고 지난 4일 김포의 자택을 방문했다.

아담한 집에는 방금 퇴근한 남편과 이은주 집사, 정부에서 파견된 장애인 활동 보조 도우미가 함께 거실에 앉아 있었다.

부부가 처음 알게 된 것은 페이스북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장애인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문승찬 집사는 페이스북에 있는 이은주 집사의 글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당시 이은주 집사는 신체 중 그나마 가장 움직임이 자유로운 오른쪽 발가락으로 힘들게 글을 쓰면서도 다른 장애인들에게 힘을 주는 글을 자주 써 올렸다고 한다. 그녀의 이런 모습이 문 집사의 관심을 끌었고, 그 관심이 존경의 마음으로, 존경은 어느덧 사랑으로 변하면서 이 둘은 다른 이들의 편견을 깨고 결혼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문 집사는 "제가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또 봉사활동을 많이 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희석된 편"이라며 "아내가 장애인이라는 것에 거리감이나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장애인의 몸으로 다른 장애인을 돕는 모습을 보고 '살아있음'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혼을 해본 이들은 안다. 연애와 결혼의 차이는 창문 너머 언덕을 바라보는 것과 그 언덕을 땀 흘리며 걸어가는 것과의 차이처럼 크나큰 차이가 있다는 걸.

"실제로 결혼해 살아보니 부딪히는 것이 많긴 하더라구요. 둘이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결혼 전에는 서로 좋은 면만 보고 좋은 말만 했었는데. 둘 다 훈련이 덜 된 부분이 있게 마련이잖아요. 세상적인 기준으로 만났으면 힘들었을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 것이라 생각하니 이 사람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람은 나를 참 잘 떠받들어 주거든요."

남편 문 집사의 말이다. 2009년부터 신앙을 갖게 됐다는 그는 집에서 15분 거리의 가구업체에서 일을 한다. 

"그냥 바라만 봐도 좋고, 그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해요. 항상 미안해요. 내가 아침에 밥을 안먹으면 그게 마음에 걸리는지 직장에 나가서도 전화해서 밥 먹었냐고 묻는 사람이예요." 

언어가 부자유스러운 아내 이은주 집사는 짧은 소감과 함께 남편에게 미소를 보낸다. 이 집사는 직장에 나가서까지 자신에게 신경 쓰고 심지어는 장애인으로서 가족과 사회에서 받은 아픔까지 껴안으려고 하는 남편이 고맙기만 하다. 

쌍둥이로 태어난 이은주 집사는 갓난 아기 때 할머니가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려 뇌를 다치는 바람에 뇌성마비가 된 기가 막힌 사연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속이 상해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구타를 일삼았고, 동생에게도 자주 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그녀는 며칠씩 혼자 이불 속에서 울고, 방치되어 춥고 굶주렸다고 한다. 더 이상 함께 거주할 수 없다는 이유로 요양원으로 보내질 때는 차라리 엄마 옆에서 죽게 해달라고 눈물로 떼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아내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버림받고 아프게 살아온 것을 아는 남편은 아내에 대해 여러모로 신경을 쓴다. 직장에 가서도 수시로 SNS를 보내고, 전화도 한다고 한다. 몸이 불편해서 외부 출입을 잘 못하는 아내를 위해 격주로 직장을 쉬는 토요일이면 여행을 자주 떠난다. 지난 결혼기념일에는 제주도 여행을, 내년에는 필리핀 해외여행을 계획 중이란다.

연말연시를 맞아 감사한 점과 새해 소망을 묻자 문 집사는 "항상 집사람과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하나님 안에서 복된 가정을 꾸릴 수 있어 감사하다"며 "내년에도 우리 둘이 건강하고 아프지 않고 지금처럼 하나님 잘 섬기고, 걱정 근심 없이 사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했다. 또한 "집사람이 날 만나기 전에는 장애인들 위해서 여러 활동을 했었는데 앞으로 그런 활동도 더 열심히 하면 좋겠다"며 "참, 이전에 시집도 냈는데 앞으로 또 다른 시집도 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이 집사는 "항상 건강하고 아프지 않고 늘 감사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며 "하루라도 좋으니까 내 손으로 밥을 차려주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이뤄주실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우리 부부에 대해 오해 아닌 오해를 해요. 어떤 사람은 집사람이 돈이 되게 많은 줄 알기도 하고, 배경이 엄청 좋은 사람인줄 알아요. 솔직히 아내가 돈 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니까요. 그런데 확실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 둘을 인도해주셔서 부부가 되게 하셨다는 것, 그리고 이 사람은 저에게 과분한, 소중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남편의 말에 아내 이은주 집사의 입꼬리가 귀에 닿을 듯이 벌어졌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