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노년

슬픈 노년

[ 4인4색칼럼 ]

이대성 수필가
2017년 12월 27일(수) 08:29

이대성 수필가
벨로체피아노 대표
진천중앙교회

필자는 물건을 포장했던 상자, 읽고 난 신문이나 잡지, 음료수 캔이나 병을 사무실 한쪽에 수북이 쌓아 둘 때가 있다. 어떤 때는 길을 가다가도 빈병이나 알루미늄캔을 주워 올 때도 있다. 물론 지저분해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괜한 일인지 모르지만, 이것을 모아두면 무척이나 좋아하며 반가워하는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벌써 몇 주째 기다리는 얼굴이 보이질 않는다.

오래전 사무실 입구에 폐지를 쌓아두었었다. 지나던 한 할머니가 가져가도 되냐고 물으시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팔순은 훌쩍 넘어 보이는 나이에 가냘픈 몸매와 쭈글쭈글한 얼굴, 손등의 주름은 지나간 세월의 고단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힘든 몸동작과 손놀림으로 주섬주섬 파지를 주워 다 낡은 유모차에 실었다.

이후 할머니는 가끔 들러 문을 빠끔히 열고 파지가 있는지 살피면서 파지를 가져가곤 했다. 필자는 혼자 사시는 할머니께서 힘들게 파지를 모아 생활을 하시는 것을 알고 할머니를 위해 파지를 모으다 보니 새로운 취미 아닌 취미 생활처럼 파지를 모으게 됐다.

할머니의 얘기를 들어보면 남편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은 왕래가 별로 없다고 한다. 특별한 수입이 없기에 외롭고 고단한 삶을 이어가려면 몸은 병들고 힘이 들어도 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예전에 가끔 지하철을 타면 배낭을 등에 지고 폐지를 줍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종종 보았는데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신문을 대체해 신문 구독이 줄었고, 지금은 폐지를 팔아도 폐지값이 내려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OECD는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높은 이유가 '기존 유교적 전통사회에서는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는 게 의무였지만, 청년들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됐고, 국가연금제도가 1988년에 출범해 1950년대 이전에 출생한 경우 혜택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의 미래, 우리들의 미래가 그들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생로병사는 인간이 거스를 수 없다지만 좀 더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오늘도 할머니를 기다려 보지만 할머니의 반가운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추운 겨울날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걱정이 앞선다. 진작 할머니의 집을 알아두고 방문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할머니께서 건강이 아주 쇠약해 거동을 못 하시거나 세상을 떠난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제발 그런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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