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자살, 그리고 우리

그들의 자살, 그리고 우리

[ NGO칼럼 ]

조성돈 교수
2017년 12월 19일(화) 13:28

한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했을 때다. 강연 후에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학생이 찾아왔다.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아빠가 6개월 전에 자살했어요.' 이 한마디로 모두는 뒷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분위기였다.

아이와 아빠는 단 둘이 살았다. 사업이 망했고 이혼으로 가정은 파탄났고, 이 아들은 아빠와 단 둘이 살게 되었다. 그런데 모든 관계가 단절된 아빠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자살할 거라고 엄마한테 가서 살라고 내내 이야기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을 때 아들은 아빠에게 알았다고 나는 아빠가 죽으면 엄마에게 가겠다는 말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을 때 아빠는 정말 죽음에 이르렀고 아이는 혼자 그 뒷수습을 다 해야 했다.

학생은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아빠가 왜 그랬는지 알지를 못 했는데 오늘 강연을 들으며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한 마디 던진다. 다른 곳에서 강연할 때 자신과 같은 아이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잘 해 달라고. 거기에는 아마 조심스럽게 해 달라는 뜻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살은 남의 일인 줄 안다. 우리 가족 가운데서는 그런 일이 안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 우리 학교, 우리 직장, 우리 친척 가운데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한 해에 자살로 1만 3513명, 즉 1만 3천 명 이상이 자살로 인해서 죽는다. 하루에 37명이 자살로 인해서 죽는 것이다. 자살은 우리나라에서 사망원인 5위이다. 당뇨병이나 간질환으로 죽는 사람보다 자살로 인해서 죽는 사람이 더 많다. 심지어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자살로 죽는 사람이 2.5배 가량 많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근거 없는 맹신일 뿐이다.

연령별로 보면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은 50대와 40대 남자들이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한참 꽃 피워야할 나이에 이들이 생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들의 자살은 정신이상이나 우울증, 낭만적이고 철학적인 것이 아니다. 너무 힘들고 외로워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항상 접하고 있는 그런 평범한 남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인생의 아픔을 혼자 끌어안고 끙끙 앓다가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아내와 한참 인생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을 남겨 놓게 된다. 또 다른 위험을 이 땅에 남겨 놓고 가는 것이다.

내가 만났던 그 고등학생과 같은 이들이 한 해에 10만 명 가량 생겨나고 있다. 죽음에 이른 1만 3천 여 명과 죽음을 시도하고 있는 이들이 적어도 20만 명 가량 될 것이다. 자살이라는 죽음이 영이 이 땅을 휘저어 놓고 있는데 우리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가운데서는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가운데 거한다. 그런데 이 많은 일들이 '우리'만 피해갈 수 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경각심을 가지고 세상을 봤으면 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관심도 가지고, 교육도 받고, 나누었으면 한다. 그냥 예방주사 맞듯이 생명보듬 교육을 받고 생명문화를 나누게 되면 이 땅에서 자살이 빨리 없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사명이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교회에서 먼저 일어나길 바란다.

조성돈 교수
라이프호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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