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구호 그 이후

긴급구호 그 이후

[ NGO칼럼 ]

배성훈 사무국장
2017년 12월 06일(수) 10:30

지난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31초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북쪽 7km 지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여진이 이어졌고 피해자가 속출했다. 현재 피해는 부상 91명, 이재민 1247명, 공공시설 644건, 사유시설 3만 1000건 등이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1월 27일자 발표). 이번 포항 지진은 1978년 대한민국 지진 관측 이래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지진이지만, 역대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한 지진으로 기록되었다.

포항에 지진이 발생한 다음 날인 11월 16일 주안교회의 주안긴급구호단(JET: Juan Emergency-Aid Team)에서도 지진 현장으로 출동하였다. 필자 개인으로도 지진 현장에 출동한 것은 2015년 네팔 대지진, 2016년 구마모토 대지진,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네 번째이다. 지진 현장에 출동할 때마다 전 세계에는 참 다양한 단체들이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재민들이 대피해있는 흥해 체육관 앞에도 수많은 개인, 단체들이 사랑의 손길을 보내고 있었다. 구호 물품도 밥, 자장면, 컵라면, 만두, 각종 음료, 과일, 피복, 담요 등등 다양한 물품들이 각계 각층에서 전달되었다.

구호 현장의 뜨거움 속에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특히나 수많은 구호단체들이 1차적인 구호에 집중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안타깝다. 지진이 발생하고 이틀까지는 먹고 자고 입는 부분이 가장 큰 일이지만, 그 이후에는 남아있는 구호물품들을 처리하는 것이 더 큰 일이다. 오히려 지진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 흔들린 이들이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더 중요하다.

2016년 구마모토 대지진으로 이재민들이 대피해있던 구마모토 체육관을 방문하였다. 체육관에 이재민들을 다 수용할 수 없어서 주차장에 수백동의 텐트를 치고 사람들이 대피해 있었다. 그리고 그 캠프 주변에 구마모토 지역의 기독교회들이 연합하여 천막을 치고 '구마모토 카페'를 열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만 해도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진 현장에 한가하게 카페라니, 심각성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를 안내하는 분이 대피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이 그곳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실제로 방문해 보니 빈말이 아니었다. 천막 카페는 이미 이재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계속해서 사람들이 카페로 와서 커피와 함께 케이크를 곁들이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이재민들은 지진으로 삶의 터전이 잃어버린 것에 큰 충격을 받지만, 이후 자신들의 일상이 무너진 것으로 큰 상실감에 빠지게 되고 상실감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심각한 심리적 외상(trauma)에 노출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지진으로 일상의 지축까지 흔들리지 않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구마모토 지역의 교회들은 여기에 집중했고, 이재민들은 빠르게 일상을 회복해갔다.

포항으로 후원금과 후원물품이 이어지고 있다. 이것도 귀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일상을 회복하도록 돕는 일이다. 친한 사람을 만나 커피 마시는 것, 편하게 이야기하면서 웃는 것, 그리고 자신의 삶을 공유하면서 행복을 나누는 것. 교회와 기독교 정신을 바탕에 둔 구호 NGO들이 이재민들의 이런 부분까지 살필 수 있으면 좋겠다. 긴급 구호보다 그 이후가 훨씬 중요하다.

배성훈 사무국장
주안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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