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다시 개안하기

<18> 다시 개안하기

[ 개혁 ]

홍원표 목사
2017년 11월 09일(목) 15:14

얼마 전 한국 청년 대학생 실태 조사가 나왔다. 심각하다. 많은 부분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통계가 차이가 없게 나왔다. 성경 공부는 많이 하는데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은 못 보는 처지가 되었다. 청년뿐이랴? 시대와 교회의 위기가 계속된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가족 같은 공동체교회로서 개척하는 교회를 향한 꿈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개척교회들이 시작되게 돕는 일을 했었다. 급기야 교인이 70명 되면 10~20명을 팀으로써 개척해보기로 하여 4년간 2년에 한 번씩 2개의 공동체교회를 분립해서 개척을 해보았다. 건물을 사용하는 공간적 제약 때문에 그렇기도 했다. 분립해서 보낸 첫 번째 교회는 자립이 되지 않아 3년 만에 다시 들어왔다. 가난한 교회가 더 가난한 교회를 만들어 버린 미안한 마음이었다.

어느덧 8년의 개척 가운데 여전히 이사해야 하는 시기마다 광야를 떠다니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쓴 다윗의 시편만 읽게 된다. 자립을 위해서라도 성장하고 싶어졌다. 성장을 위해서 성도들의 현실적 필요를 채우는 종교적 소비성을 채우는 것에도 때로는 익숙해지고 순응하면서 때로는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그러한 현실적 필요를 채우다가 교회에서 예수님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누구를 비난할 처지가 아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에 예수님은 홀연히 사라지셨다. 예수님을 잃어버린 교회는 신랑을 잃어버린 신부다.

그래서 종교개혁 500주년에 '첫사랑'을 점검해 본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2011년 11월 11일 방지일 목사님을 모시고 청년 집회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런저런 고민과 질문을 드렸는데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강단에서 한 시간 내내 말씀으로 답을 하셨다.

자신은 5번의 중국에서의 세계적 격변을 겪으셨고 수많은 일을 겪었는데 100년 즈음 사시니까 소수의 무리라도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믿고 사는 사람만 있으면 문제없다는 것이었다. 맞다. 동의가 된다. 지금은 이런 근본적 시각의 재교정이 다시 필요하다. 개혁에 앞서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개안이다. 다메섹의 사도바울 같이.

홍원표 목사 / 더하트하우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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