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처음으로

<11> 처음으로

[ 개혁 ]

송현석 목사
2017년 11월 09일(목) 14:57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우리 교계에 변화와 쇄신의 요구가 새로운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개혁이라는 용어의 개념이 분명하지 않고 사용하는 이들의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괄목할 만한 결과물들을 이루어 낼지 걱정된다.

근본적으로는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못 박았던 500년 전 루터의 삶이, 개혁의 표본으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루터는 자신의 지지기반이 제후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등장한 농민전쟁 당시 "제후들의 죽음보다는 농민들 모두의 죽음이 더 낫다"라며 권력자들의 편에 서는 그릇되고 치명적인 신앙관을 드러낸다. 종교개혁의 다이너마이트가 된 위대한 업적을 감안하더라도 '약한 자'가 아닌 '강한 자'의 편이 된 루터의 정치적 입장은, 우리가 개혁의 표본을 루터로 방향 짓지 못하게 한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개혁의 표본은 2000년 전 예수와 그리고 당시 군중의 반응에 있다. 지금의 한국 기독교는 국민들로부터 모든 비난의 집합소가 되어 있지만, 2000년 전 갈릴리에서의 군중은 예수님이 너무 좋아 함께 지내기도 하며 그저 따라다니기도 하였다.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 기적의 배경은, 예수님이 좋지만 가난하여 기본 요깃거리도 준비하지 못하고 대책 없이 며칠을 동행하던 수많은 군중들의 행렬이다.

개혁은 예수가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백성들의 신망을 얻는 것이다. 예수님은 2000년 전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를 선교지로 선택했다. 고레스 칙령을 통해 귀족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다시 성전을 건축하고 모세5경을 체계화했지만 그들은 더욱 중요한 건 놓쳐버렸다. 갈릴리와 사마리아를 배척했다. 돌아온 귀족들은 나라를 빼앗겨 수백 년 동안 식민지 고충을 겪던 백성들을 죄악시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곳은 외부적으로 경건해 보이지만 백성들로부터 원망을 샀던 예루살렘이 아니라, 식민지 정부의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억압정책으로 촌락의 공동체가 무너지고 결국 자신의 가족과 스스로의 자존감까지도 망가진 '죄인들'의 터전이었던 '갈릴리'였다.

예수님은 모든 걸 잃어버린 죄인들의 공동체에 찾아오셨고, 그들을 위로하셨고, 그들을 치료하셨으며, 그들의 배고픔을 걱정하시며 그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셨다. 또한 그들을 짓밟던 악한 영들을 내어 쫓음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음을 선포하셨다. 만약 예루살렘이었다면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일이였겠지만, 갈릴리 백성들은 그 사랑에 감격했고 모든 걸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렸다. 그 억눌렸던 자들의 영광드림이 기독교 선교의 위대한 업적의 토양이 되었다.

예수님의 이름이 좋게 드러나는게 개혁이라면, 어떠한 이유로든 스스로 죄인 된 자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위로하고 사랑한다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송현석 목사 / 남양주 밀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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