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과 '차이'를 '포용력'으로 껴안다

'다름'과 '차이'를 '포용력'으로 껴안다

[ 기독교교육이야기 ]

우수호 목사
2017년 08월 22일(화) 13:44

미래의 한국은 화해와 연합의 시대를 열어가는 나라가 되어야 하며, 하나님 나라 건설과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은 다양한 사람과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언젠가 서울 인근도시에서 중학생들이 지나가던 외국인 노동자를 놀리다가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흑인이던 백인이던 똑 같은 사람이다. 만나서 이야기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우리와 같은 감정과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편견이나 선입관을 가지고 무시하거나 조롱해서는 안 되는 인격을 가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그런 편견이나 선입관을 깨고 열린 마음으로 만나서 대화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데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는 다르거나 새롭게 만나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능력이 필요하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사이에 있는 나그네 셋을 맞이하여 음식을 대접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낯선 나그네였지만 그들을 기쁘게 맞이해 대접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을 편견이나 선입관 없이 환대하는 '포용력'있는 인성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포용력(Tolerance) 이란 '남을 너그럽게 감싸 받아들이는 힘', 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선입견이나 편견을 버리고 자신과 다른 모습이나 생각, 문화를 가진 사람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편견은 포용력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편견이란 나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외모와 성격, 문화와 태도, 생각, 견해, 행동 등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자신의 잣대로 다른 것을 판단하면 다른 모습을 인정하지 못한다. 자신만의 기준인 자신의 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하기 때문에 전혀 융통성이 없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없다.

오히려 안 좋은 감정이 생기고 다른 의견이나 생각, 문화와 모습의 차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포용력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할 줄 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할 줄 알기 때문에 나만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상황을 판단하지 않는다. 다름을 이해하고 나름대로 자신의 입장이나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을 해준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그것이 틀렸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포용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의 역할과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인정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2장 14~26절 말씀에 보면 어떤 사람은 손, 어떤 사람은 발, 어떤 사람은 눈, 어떤 사람은 코 등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포용력은 그 사람의 존재 의미와 역할을 알고 인정해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두가 다양하고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함께 협력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두가 한 몸을 구성하고 있는 지체로서 서로 분쟁이 없이 함께 돌보면서 각자의 다른 역할과 기능을 발휘하게 하여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해야 한다. 한 사람이 고통을 받으면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한 사람이 영광을 얻으면 모두 함께 즐거워 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청소년들을 비롯한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인성 중의 하나는 세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와 다름에 대해 편견이나 선입견을 버리는 동시에 그것을 인정해주고 수용할 줄 아는 포용력인 것이다. 우리 몸의 손가락들처럼 우리 각자도 그 자체로 유일한 존재로서 의미와 특성을 가지고 있고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이 감당할 때 사회 전체를 지탱할 수 있으며, 강력한 힘을 발휘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은 떨쳐버릴 수 없는 '다름'과 '차이'로 가득 차 있다. 이런 '다름'과 '차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지혜로워진다면 이런 다름이 아름다울 수 있다. 우리 사이의 다름을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보지 않고 아름다운 것들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계발해야 할 필요가 있는 능력은 포용력이다. 우리가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서 복음의 정신 아래에서 청소년 때부터 '포용력'이라는 인성을 길러야 한다.

우수호 목사
대광고 교목실장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