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함께' 하는 작은 '감동'

<4> '함께' 하는 작은 '감동'

[ 개혁 ]

이상록 목사
2017년 08월 03일(목) 10:42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떠나는 키팅 선생님을 보내며 교실에 남이 있던 학생들이 책상 위로 올라가며 키팅 선생님에 대한 애정과 지지를 용기 있게 표현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반복해 받은 다짐은 "함께하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보내고 있는 한국교회를 생각하면서 "한국교회는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감동을 주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그런데 참 아프게도 그렇지 못하다는 대답을 얻는다. 복음전도를 위해, 사랑을 전하기 위해 많은 말을 하고, 많은 것을 보여주고, 많은 것을 나누어 주는데 정작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 '왜 한국교회는 많은 것을 세상에 주면서도 작은 감동을 주지 못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가 향하는 방향과 서 있는 자리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아야 한다.

교실이 아닌 어두운 동굴 속에서 "캡틴, 오 마이 캡틴"을 찾고 있던 학생들에게 지식전달자 선생님이 아니라 함께 항해하는 동료요, 선배요, 선장이 되어준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었던 것처럼, 같은 입장에서 함께하는 그 자리에서 감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박노해 시인은 '오늘은 다르게'라는 시집에 이런 시를 썼다.
'말로 설명해봐요, 잊어버릴꺼예요/눈앞에 보여줘 봐요, 기억할지도 몰라요/날 감동시켜봐요, 이해하게 될꺼예요'

감동은 말하고(tell), 보여주는(show)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involve)에서 일어난다.

오늘 한국교회는 함께 있기를 원하는 이웃들이 있는 그 자리에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과 같은 입장에서 함께 머물러 있었는가?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한다. 세상을 가르치고, 세상에게 돌아오라고 말로만 외치는 자리에 있지는 않았는가, 우리의 모든 관심이 교회 안에 머물며 많은 것들을 보여주기에 급급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입장의 동일함'을 가지기 위해서 죄인들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던 예수님처럼, 삶의 낮은 곳에서 함께 하기를 원하는 우리의 이웃들과 오랫동안 함께 머물러 있는 모습을 조용히 그리고 오랫동안 삶으로 보여줄 때, 한국교회가 세상 속에서 작은 감동들을 많이 만들어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머물러 있어야 할 그 자리를 다시 한번 회복하기를 소망한다.

이상록 목사/창동염광교회 장애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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