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위기, 선교의 위기

교회의 위기, 선교의 위기

[ 논단 ]

김상길 목사
2017년 07월 21일(금) 08:29

김상길 목사
총회 파송 카자흐스탄 선교사

'교회의 위기는 선교의 위기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위기는 선교지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말은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교회 중심의 선교를 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선교신학적으로 보면 교회 중심의 선교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나고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로 구조가 바뀌기 시작한지 50년을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선교는 여전히 20세기 초기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교회의 선교는 하나의 중대한 질문 앞에 진실한 답을 해야 한다. '교회를 위하여 선교가 존재하느냐 아니면 선교를 위하여 교회가 존재하느냐?'라는 질문이다. 

성경을 보면 두 가지 형태의 교회가 나온다. 하나는 구약적 형태의 교회이고 또 하나는 신약적 형태의 교회이다.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 마태복음 16장의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당시 엄청난 교회개혁을 부르짖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의 교회를 개혁해 새로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루터나 칼빈이 개혁한 교회를 따르는 사람들이기 이전에 주님이 세우신 이 개혁 교회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다. 

구약적 형태의 교회는 제사 중심의 교회로서 제사장, 희생제물, 성소를 중시했다. 이중 하나라도 없으면 제사를 드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신약적 형태의 교회는 구약적 형태의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개혁해야 한다. 히브리서는 그것을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주님은 모든 믿는 자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드시었고, 십자가로 더 이상의 희생제물이 필요하지 않게 만드셨으며, 성소의 휘장을 찢으시고 하나님이 나타나게 하셨다. 그리고 성도들의 몸을 성전으로 만드셨으며, 교회의 중심을 제사가 아닌 선교(전도)로 삼으셨다. 주님은 분명 선교를 위해 교회를 세우셨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을 뽑으셨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 주셨으며,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무지한 자들을 가르치셨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주님이 세우신 신약적 교회의 형태로 가고 있는가를 묻고 싶어서 이다. 만약 구약적 형태의 교회에 머무르고 있다면 개혁돼야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개혁돼야 한다. 교회의 구조는 선교적 구조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주님이 세우시고자 하신 개혁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에 나타나는 선교적 현상들은 심상치 않다. 선교적 열의가 점점 식어가고 예산 문제로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을 축소하고 있다. 필자가 가끔 한국에 나가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수의 교회들이 끊임없이 건축 등 비본질적인 일에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곧 교회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약 복음의 역동성이 우리 시대에 멈춘다 하여도 하나님은 또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실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시대적 사명을 다하지 못한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지금의 한국교회에 주는 분명한 교훈이다. 

필자가 신학 공부를 하던 시절에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미국이나 유럽의 성장하는 교회들을 이상적 모델로 삼았었다. 그러나 그렇게 모델로 삼았던 교회들이 지금 어떠한가? 없어진 교회도 있고, 팔린 교회도 있고, 타종교의 모임 장소로 전락한 교회도 있다. 한국교회도 그 전철을 밟을 것인가.

한국교회가 왜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교회의 위기란 주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주님이 개혁하신 교회개혁의 본질은 선교이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다. 호불호는 더더욱 아니다. 물론 선교하는 과정 속에 불미스러운 일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본질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진정한 개혁은 주님의 교회 개혁을 따라 가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가 구약적 제사의 형태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적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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