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있는 삶과 함께 하는 사회를 꿈꾸며

경계에 있는 삶과 함께 하는 사회를 꿈꾸며

[ NGO칼럼 ]

문경아
2017년 05월 25일(목) 10:01

"잘 곳이 없다. 지금 입고 있는 옷과 돈 3000원이 전 재산이다."
가정이 아니다. 사실이다. 이 사실에서 시작하여 자립 및 주거안정이라는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

노숙 하시는 분들을 보고 '사지가 멀쩡한데 왜 저러고 있을까?'하는 의문을 흔히 갖는다. 고시원 월세가 밀려 쫓겨나 쉼터에 들어오거나, 쉼터를 전전하며 입ㆍ퇴소를 반복하는 사례를 보면 의구심이 더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노숙을 하다가 일시보호소를 통해 쉼터에 들어온 A가 있었다. 쉼터에서 식사 하는 것조차 타인의 시선을 살피며 조심스러워 했다. 입소 후 몇 개월이 지나 체력을 보강한 후 구직활동을 하였다. 공공일자리보다는 민간일자리를 원했다. 몇 군데 식당일을 알아보았다. 면접을 갔다 와서는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다른 생활인과 갈등이 생겼다. A가 원하는 대로 방 배치를 하기도 하였으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A는 갈등해결 방법을 '회피'로 선택했다. 다른 시설로 전원하기를 원했다. 제안이나 설득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닫쳐진 마음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오랜 시간 소외와 상처로 점철된 심리적 어려움은 A를 갈등상황에 대해 조금도 유연할 수 없도록 하였다. 다른 쉼터에 가도 비슷한 일이 예견 되었지만 다른 쉼터에 가겠다는 A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수급자 지위를 가지고 있다면 그나마 사회안전망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급자 지위를 가지려면 근로무능력이라는 의학적 판정을 받아야 한다. 특별히 몸에 이상이 있거나, 정신적 문제가 현저하지 않는 한 근로무능력 판정을 받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장애 판정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근로무능력 판정을 받은 것도 아니라면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하면서 주거지원 받아 자립하면 되는 것이지만 삶은 정해진 공식대로 되지 않는다.

사회는 경쟁과 학벌위주, 물질만능의 신자유주의 체제안에서 원가족이 해체된 개인에게 수학공식 같은 정해진 삶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삶을 준비할 선택과 기회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반복된 실패경험을 개인의 문제로만 국한 하는 것은 이미 공평하지 않은 출발선상에서 수많은 소외와 절망을 딛고 서 있는 개인에게 더 깊은 좌절로 이어질 뿐이다.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과 기회가 주어지도록 사회는 정책적으로 함께해야 한다. 오늘도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사회의 보호 속에 들어 갈 수 삶들이 벼랑 끝에서 방황하는 것을 본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는 주님처럼, 우리 사회도 끝까지 함께 고민하며 개인의 성장을 돕는 사회가 되어 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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